
[26일 밤 12시까지 숙제기간 끝났죠? ㅋㅋ 날짜 피하느라 애썼습니다] 내 나이 여덟살에........ 서서 오줌 누다가 옷 다 버리는 일 없었고 빡빡머리 사내아이 노릇을 끝냈고요. 국민학교 입학하여 처음으로 남자짝궁과 손을 잡으라는 담임선생님의 명령에 억지로 잡았지만 그 느낌이 너무도 싫어 손가락 하나 살짝 걸었구요. 국민학교 1학년 종합성적 평균 100점으로 전교 1등을 했었는데 친구들이 "공부 잘하는 너랑은 안놀아!" 하고는 떼거지로 저를 왕따시키고 우르르 몰려가 지네끼리 놀았습니다. 눈이 쌓인 동네 한 모퉁이에서 엉엉 울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비참했던 그 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티비 보는 시간은 저녁 먹는 시간 잠깐, 무서운 아빠는 티비를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학창시절 드라마가 뭐가 나왔는지 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가끔 가요프로 할 때 사정해서 시청할라치면 "저것도 노래냐???" 하면서 채널을 돌리든지 티비를 끄곤 우리 방으로 보내버렸어요. 대신 아빠가 즐겨듣는 육자배기를 신중하게 감상하기도 하고 따라 부르기도 했죠. 가끔 집에 혼자있으면서 육자배기라고 적혀있는 테이프를 넣고 듣다보면 찡한것이 느껴지기도 하여 또다른 테이프 단가, 춘향가, 심청가 같은 판소리를 들으면서 특히 심청전에서 심청이와 심봉사가 상봉하는 장면에서 '딸을 보고 싶은데 보이지 않으니 갑갑하다는' 그 대목에선 눈물을 질질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 어린것이...명절때 티비에 조상현, 안숙선 외 많은 판소리 대가들이 나오면 아빠하고 진지하게 시청했습니다. 둘이서만 신났던 기억도 있네요. 장구, 꽹과리, 징, 북 사물놀이 기구를 잘 다뤘던 아빠는 어느 문화 행사에도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언니들과는 다르게 지독하게도 아빠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그 장단에 어깨춤을 추었습니다. 어른들이 참 맹랑한 것이라며 이뻐하는 그 재미를 느낀거죠. 처음에는 까부느라고 했던 것이 나중에는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항상 대장이었던 아빠가 무척이나 자랑스럽기도 했구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아빠 따라다니는 것이 더 좋았던 8살을 보낸 듯 하네요. 지금도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다가 "내가 한가락 뽑을것이니 잘 들어봐라" "청~~~~~~~~~~~~~~~~산~~~~~~~~~~~~~~~리 ~~~~~~~~~~~~~~~~~~~~~~~~~~~~~~ 벼~~~~~~~~~~~~~~~~~~~~~억~~~~~~~~~~~~~~~~계~~~~~~~~~~~~수~~~~~~~~~야~~ 수~~~~~~~~~~~~~~~~~이~~~~~~~~.........................." 하면서 세상 한 맺힌 표정지으면서 숨이 까딱까딱 넘어갈 듯 뽑으면 친구들은 배를 움켜쥐고 정신을 못차립니다. 아직까지도 끝까지 불러보지를 못했습니다. 그 거 다 부르다간 날이 새거든요. 제가 살아온 삶은 어렸을 때 부터 보통 사람들하고 참 많이 달라요. 언니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어렸을 때 제 별명이 괴짜예요. 이 밤 그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하여 까까머리 앨범을 뒤적이고 있네요. 보여줄 수도 없고.ㅋ 이걸 누가 여자아이라고 하겠어요. 기막히고 한 많은 인생사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