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날의 겨울)연날리기, 연싸움......
김혜영
2008.01.26
조회 19
겨울이 깊어지면 아버지께서는 오빠를 위해 방패연을 만드셨습니다.

한지를 꺼내 방바닥에 판판하게 펴놓고
대나무살을 칼로 얇게 잘라 사포(삐빠라고 하는)로 갈고
주전자 뚜껑으로는 가운데 구멍을 그리고
매우 치밀하고 꼼꼼하게 길이와 간격을 맞추는 연을 만드는 작업은
옆에 둘러앉아 보는 저희들에게도 손에 땀을 쥐게 했지요.

방패연은 균형이 제일 중요하단다. 그래야 잘 날고 높게 오랫동안 떠있지 하시던 아버지는 오빠에게 방패연에 그림을 그려넣게 해서
오빠연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셨지요.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정신으로 방패연을 완성하신 아버지는
숨죽이며 옆에서 지켜보던 저와 동생에게는 꼬리연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긴 꼬리는 우리에게 오리고 붙이게 해 역시 자긍심을 갖게 하셨지요.

스스로 만든(?) 연을 자랑스럽게, 조심스럽게 들고 뚝방으로 나간 우리들은 이미 뚝방에 많이 나와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들틈으로 들어가 힘껏 연에 바람을 태웁니다. 연이 처음 바람을 차고 오를 때의 가슴떨림.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듯 허공으로 꼬리를 흔들며 오르던 꼬리연, 차가운 겨울하늘 속에 한 점으로 박혀있던 오빠의 방패연은
지금껏 가슴설레게 합니다.

오빠얼레의 실이 거의 다 풀어질 무렵 연싸움이 벌어집니다. 연싸움의 무기는 유리실입니다.실에다 유리가루를 묻히느라 손도 다치고 유리실이 손바닥에 걸려 순간적으로 선홍빛 피가 솟기도 하지만 오빠나 남자애들은 연싸움에 목숨을 겁니다. 어느 덧 공중에서 연줄들이 서로 얽히고 누군가가 절묘하게 줄을 땡기면 상대편 연이 툭하고 끊어집니다. 얼레에서 끊어진 연은 하늘 저멀리 날아가 금세 시야에서 안 보이게 되고 연싸움에 진 아이는 울먹이며 씩씩대다가 빈 얼레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럴때면 개울 얼음장아래서 빨래를 하고 오시던 할머니는 "연은 원래 날려보내는 게야. 연에다 질병, 액운 다 실어서 멀리 멀리 보내야 잘 살아"하시며 우는 아이를 달래시곤 했습니다.

오빠는 아버지께서 워낙 정성껏 만드시고 연줄도 유리가루를 듬뿍 묻혀 뺑뺑해서인지 항상 연싸움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습니다. 아버지 역시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오빠연을 멀리 멀리 날려보내시곤 했지요.

그때 그 연은 대체 어디로 갈까 하며 끝까지 눈이 시리게 쳐다보던 여덟 살 여자아이는
어느 새 오십이 되었고 겨울이 끝나가도록 멀리 날릴 것을 찾지 못하고 욕심사납게 웅켜지고 있는 아줌마가 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많은 것을 비우고 날리고 나누고 싶습니다.

연(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노래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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