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조점자
2008.01.26
조회 16
얼마 전,친구로부터 재미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듣고있다면, 뭐가 재밌냐며 저에게 한사발 구박을 털어 놓을 테지만, 그래도 전기 밥솥에서 밥을 퍼 담다가도 웃음이 픽픽 하고 새어나오는건 어쩔수 없는 모양입니다.
왜냐구요? 제가 물었지요. 119구급차가 소리내며 왔냐구요.
그 친구답이 싸이렌소리 내지말고 조용히 와달라고 했답니다. 요 몇일 전에 눈이 많이 왔잖아요. 그 친구가 저녁에 밖을 내다보다 무슨 기분이었는지 눈이 쌓인 공원을 돌아보고 싶어지더랩니다. 그리고 한두바퀴 돌았을쯔음 해서 저 멀리서 어린애들이 언덕빼기서 비료푸대를 깔고 썰매를 타는게 눈에 띄였다더군요. 그 친구도 어린시절이 생각나 반 강제로 한아이의 푸대를 빌려서 신나게 언덕을 내려오다 그만.. 공중에 붕 하고 떠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한쪽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서 짝궁뎅이가 되어 버렸답니다. 아직도 생생해요. 그 친구가 제게 전화해서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119를 불러야되겠다고 말하던 순간말이죠. 처음엔 웃었지요..

그렇게 밥을 퍼 담다가도 그 친구 썰매 타다 넘어진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픽픽 웃음이 새다가, "아 그래." 하고 썰매를 타던 제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네, 전 전기도 안 들어오는 어느 시골의 산골소녀 였답니다. 지금은 대청댐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깊은 물 아래에는 수장된, 아니 타임머신처럼 언젠가 다시 꼭 나타날 것만 같은. 제 어린시절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참 예쁜마을이 있어요.

요즘 같은 겨울엔 강가에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오빠가 나무를 깍아 그것을 굵은 철사로 덧붙여서 만든 썰매를 타곤 했습니다. 한 참이나 추위도 모르고 썰매를 타고 나면 꽁꽁 얼어버린 손과 발을 녹이기 위해 남자애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모닥불을 피우곤 했었죠.. 그 얼음장 같던 손발을 녹이려고 신발을 벗고 발을 불 가까이에 뜨끈하게 쬐고 나면, 발바닥은 어느새 뽕뽕 구멍이 나있기도 했구요. 그때는 나일론 양말이라서 조그만 불똥만 튀어도 쉽게 구멍이 나버리곤 했었거든요. 엄마한테 혼날까봐 몰래 벗어 놓고 방으로 도망가면, 방안 화로위엔 된장 뚝배기에 된장이 따끈따근하게 놓여 있었어요. 잘 익은 김장 김치와 된장찌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최고의 반찬이었고 지금도 생각만 하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입니다. 아. 그렇게 된장에 한 눈을 팔고 있을 때 쯤. 엄마는 구멍난 양말을 들고 방에 들어와 저를 찾으셨고 결국엔 항상 들키고 말았답니다. 엄마는 제 구멍난 양말을 깨끗이 빨아서 밤이 되면 그 것을 기우곤 하셨어요. 발바닥에는 다른 천을 대서 기웠고, 발등엔 같은 색의 빨강실로 날씰,씨실 이렇게 엮어서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기워주셨어요.

사실 요즘같은 추위는 정말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땐 무슨 정신으로 그리 신나고 즐겁기만 하던지.. 그 누가 말했던 것처럼,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또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마냥 증겁기만 했었지요. 마치 온 세계가 우리의 것인 양, 그리고 우리가 온 세계의 것인 양 말입니다.

썰매 덕분에 한 쪽 엉덩이가 짝궁댕이 된 친구에게 다시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봤더니 오전엔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고 오후엔 한의원에서 침 맞으며 보내고 있답니다.
티켓을 얻으면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해준 이 친구랑 같이 보고싶어요..
오랜만에 떠오른 어릴적 추억에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진 어느 겨울날 입니다. 감기조심 하세요.

비와외로움-바람꽃
사랑 TWO-윤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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