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정미섭
2008.01.31
조회 15
여섯살 때의 설날이예요
제 고향은 종로구 사간동 101번지...초등학교 5학년까지
그 집에 살았습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당시 동대문구 창신동에 있는
"창신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셨던 큰 아버지 댁으로 갑니다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가는 전차를 타구요
큰집은
학교안의 사택에 있었는데 꽃밭이 넓은 이층집이었지요
그 해의 설날아침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워 왔는지
운동장에 새하얀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그야말로 백설같은 눈이...
언니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눈사람을 만든다면서 녹이 슬어 무뎌진
부엌칼(울퉁불퉁한 면을 고르게 다듬어 줌)에, 소나무가지, 숯,
그리고 밀집모자까지 챙겨 들고 아주 신이 나서 나가는데
저도 당연히 따라 나섰죠
그랬더니 사촌언니들이
"너는어려서 감기드니까 집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합니다
저 보다 겨우 세 살 많은 저의 언니는 데리고 가면서...

할 수 없이 이층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게 보이길래
나도 나가게 해달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땡깡을 부리고 언니들한테
때리는 시늉도 해 보고 아무튼 온갖 심통을 다 부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촌언니들이
들어오자마자 쬐그만한것이 까불었다고 막 야댠을 치는겁니다
사실 사촌언니들이랑 나이차이가 많아요 다섯 언니들 중에
막내언니가 저랑 열 두살 차이 띠동갑이거든요

꾸중을 듣고 나니
어린 마음이지만 저는 정말 속이 상하고 억울했습니다
혼자서 서럽게 서럽게 울다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서는
무작정 집으로 향했지요
교문을 나설 때 수위아저씨가 (그 땐 소사 아저씨라고 했어요)
어디가냐고 물으시길래 문방구에 간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고
전차에서만 내다보던 낯 익은 길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동대문에서 광화문까지의 종로길에는 한약방과 상가들이 있어서
구경거리가 많았어요
호랑이나 여우, 너구리같은 동물들의 박제가 진열장에 있었고
집 짓는 자제를 파는 곳엔 문어다리를 묶어 놓은듯 한 "아교"라는,
불에 녹이면 접착제가 되는 물건들도 쌓여있고
양장점도 많아서 마네킹에 입혀놓은 옷도 들여다 보고
길가엔 노점상도 있어서 세배돈으로 왕사탕도 사먹고
이것 저것 구경하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기억이 잠시 끊기는데
대문은 문간방에 사는 아주머니가 열어주셨다고 하네요

한편..
큰집에선 난리가 났죠 애가 야단을 맞고 아침나절에 없어졌으니
학교 안을 다 뒤집고 수위아저씨까지 동원이되고 ---
엄마는 울고불고 언니들은 심한 꾸중을 듣고(하이고~고소해라)
할수없이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엉망이 되어 버린 명절을 보낸
식구들이 집으로 와 보니 제가 얼었다 녹아서 빨갛게 된 얼굴로
아랫목에서 이불까지 잘 덮고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더랍니다
엄마는 상상도 못 하셨대요 집에 와 있으리라고는..
한번도 걸어서는 큰집에 간 적이
없는데 어린 것이 어떻게 집을 찾아왔는지..
기막힌 엄마는 이 사실을 알리러 다시 큰집으로 가셨지요
(그 땐 전화가 없어서)

그 후로
저는 친척들에게"요주의 인물(?)로 낙인이 찍혀서
아주아주 편한 어린시절을 보냅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야단도 칠 수 없는,그랬다간
수습도 못 하는 일을 저지르는,깡순이가 되어 버렸지요 호호호...

유*가*속 덕분에 옛 일을
떠올리고 글을 올려 봤습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 福 많이 받으세요 ^^*

듣고 싶은 곡 있습니다.
유심초-사랑하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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