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사연) 아련한 설날의 추억...
이명준
2008.02.01
조회 18
어느 해인가, 제가 초등학교 시절의 설날이었습니다.
영하 10도는 족히 될 듯싶은,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어느 명절 때나 다름없이 설 바로 전날 어머니가 시장에 가셨습니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 돌아 오신 어머니의 장바구니에 우리 형제들은 모두 눈을 반짝이며 기대를 걸었습니다.

아버지의 내의 한 벌, 농구선수인 중학생인 둘째 형의 털장갑 하나, 신문배달을 하던 셋째 형의 털 장화 하나, 다섯 째 동생과 막내 동생의 털실로 짠 목도리 하나 씩 …
끝내 내 몫은 없었습니다.

남자 형제만 다섯이 한 방을 쓰던 시절… 그날 밤, 난 그 좋아하는 만화책도 읽지 않고 초저녁부터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서운함을 씻을 수 없었습니다.
“왜 엄마가 내 선물은 사지 않았을까?”
“난 정말 다리 밑에서 주어온 것일까?”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는 큰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붙고 어제 시장에서 사오신 닭 한 마리를 넣고 삶기 시작 하셨습니다. 불을 피우고, 장작을 넣어 불길을 잡아 주는 것은 당연히 내 몫이었습니다. 어서 속히 닭이 푹 삶아지어 푸짐한 아침밥을 먹고 싶은 마음에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지방에 사는 큰 형이 소고기 두어 근을 들고 들어 온 것은 아침식사 직전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 여섯… 우리 부모님들이 이북에서 월남하신 터라 친척들이 없기 때문에 명절 때 마다 밥상에 둘러 않는 모든 가족이 고작 이것뿐 이었습니다.

푹 삶아진 닭을 찢어서 몇 조각 씩 넣은 국이지만, 정말 얼마 만에 먹어 보는 고깃국인지…., 아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 식사 후, 온 가족이 들러 앉아 오랜만에 온 큰 형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는 연신 질문을 하셨습니다.

평소에 과묵하신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신 것은, 오랜만에 보는 아들에 대한 그 동안의 그리움 때문이란 것을…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아들의 작은 설빔 조차 마련하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도, 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고향으로 가지고 갈 선물 꾸러미가 작은 들 어떻습니까.
아니, 빈손인들 어떻습니까.
부모님께 가장 귀한 선물은, 명절에 당신들의 자식의 모습을 보는 것 입니다.

가슴을 활짝 열고 창공을 바라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밝은 내일이 있습니다.
오늘의 어려움은, 내일의 좋은 이야기 거리 입니다.

밝은 마음으로 고향을 향하십시오.

즐겁고 보람된 설날 명절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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