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라는 표현이 맞는 거 같습니다.
이제 사흘 후면 설날이지만 설레임도 기다림도 없는,
그래도 결혼전에 기다려졌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제는 참으로 좋아했어요...
지금도 그곳엔 큰아버지와 사촌오빠가 살고 있는 고향...
모든 친척들이 다 모이는 날...
사촌오빠며 언니며 작은아버지. 작은엄마.....
동네에 7촌아제네까지 모여살던 시절이라서
이집 저집 다니면서 맛난 것 많이 먹고.
모두가 친척이라서 어느집을 가더라도 먹을 것이 많았던. 그런시절이었더랬어요.
그때 풍경을 그려보면,
우선 설을 쇠려면 장을 보러 가야했는데
장터까진 한 십리쯤 됐었던 거 같애요.
큰아버지따라 장엘가면 소 달구지를 끌고 가는데
그 달구지좀 타고 갔으면 좋겠는데 못 타게 하더라구요.
빈 달구지로 가면서 말입니다. 소가 힘들다고.
에구 어린애도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그래도 좋다고 따라가서 신기한 시장구경 실컷하고,
호떡이며 붕어빵이며 사 달라고 졸라서 얻어먹곤했었죠.
가래떡을 하기위해서 간 방앗간에선 차례를 기다리느라 길게 줄을 섰었구요. 요즘이야 그냥 방앗간 아니 방앗간도 안가죠. 떡 가게에가서 사옵니다만.
그리고 식혜를 하려면 항아리에가 재료를 넣고 아궁이에다 삭혔었는데 ...
정말 아득한 옛날이 되어버렸네요.
전 지금 전자밥통에다 식혜거리를 삭히면서 이렇게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구요......
또 식용유가 귀했던 시절인지 아니면 내 고향이 너무 산골이라서 그런지
전을 지질 땐 마당에다 풍로를 내다놓고 가마솥뚜껑을 뒤집어서 풍로위에 올려놓고
호박꼭지부분을 잘라서 그곳에 식용유를 찍어서 솥뚜껑에다 바르고 그리고 전을 부쳤는데 뒤집게는 부엌칼이었구요.
처음에 구운것은 아이들이 먹으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꼭 두번째 장부터 먹을 수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너무 싫어했던 배추전. 지금은 친정에가면 그것만 먹습니다.
개운해서요......
여자들이 이렇게 음식을 장만할때 남자들은.......
큰아버지나 아버지께서는 톱밥속에 묻어둔 밤을 꺼내서 밤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도 요즘 명절이 다가오면 남편과 시동생에게 밤을 치라고 내어줍니다. 그러면 그것도 하기싫어서 꼭 쓸만큼만 쳐서준답니다. 에휴 좀 많이 해주면 밥에도 놔먹고 좋으련만....
그러는 동안에 어린아이들은 사촌오빠들을 졸라서 팽이나 스케이트를 만들어달라고하죠.
스케이트라고 지금처럼 멋진 것이 아니었어요.
송판을 몇장 이어붙이고 그 아래에는 굵은 철사를 감아서 만든것이었지요.
팽이는 소나무를 깎어서 만들고 바닥쪽에는 못을 박고, 윗면에는 크레용으로 이쁘게 색칠을 해서 아주 이쁘게 만들어준답니다.그러면
그것을 들고 얼음이 얼어있는 논바닥으로 가서 팽이치기도 하고
스케이트도 타고 정말 신나는 명절이었습니다.놀다가 지치고 추워서 빨갛게 얼어서 집으로 오면 군불을 떼어서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또 놀고..........어릴적이 좋긴 하죠?
큰어머니랑 엄마,작은엄마들이 해 놓은 많고 맛있는 설 음식들 ....훗 그것들 밤에 몰래 찬방에서 훔쳐먹는 재미라니.
그중에서 전 검은참깨고물을 묻힌 경단이 젤 맛있더라구요. 그래서 꼭 혼이났답니다. 입가가 새카맣게 깻가루가 묻어있으니 발뺌을 할 도리가 없었던 게죠.
밤에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해서 잠들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결국잠들어서 설날아침 늦잠자기 일쑤였구요.
설날아침에는 엄마가 만들어주신 때때옷으로 갈아입고
학렬이 높은 친척집부터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러 다니는데
우리 할아버지 차례가 정말 싫었었어요.
얼마나 손자랑 손녀를 차별을 하시는지. 세뱃돈의 액수가 틀렸다니까요.....흑흑..
호주제가 폐지된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옵니다만...
시절이 이렇게 변할줄이야 ....불과 40여년도 안 된일인데.....
그래서 그런지 전 딸만있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할아버지가 정말 밉답니다. 사촌남자형제들도 싫구요............
하지만 이젠 그시절이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아득한.................
결혼하고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도리를 하다보니
명절에 그것도 설에 멀리있는 친정쪽 친척들을 만난다는 건 감히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린 지금에야 그때가 정말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올봄에는 고향엘 한번 다녀올까 합니다. 너무 늙어서 고향가는 것 조차 귀찮아지기전에 말입니다.
제 고향은 [고행의 봄] 가사처럼
봄이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아이들에게는 나의 어릴적같은 추억조차 만들어줄 수가 없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아파트에서 모든 걸 해결하다보니.
뭐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추위에 떨지않고 일 할 수 있어서 좋긴합니다만.................
에구 정신없이 쓰다보니 뭐가뭔지......^^
이곳에 오는 모든님들 설 잘 쇠시구요. 고향가시는 분들 무사히 잘들 다녀오요. 다시한번 새해 福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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