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가물한 40여년전 내 나이 8살적 어린날의 기억...
쌀도 귀한 그때
가마솥에 하얀 이밥과 보리밥을 따로 한솥에 분리를 해
언제나 솥뚜껑 열면 하얀 김이 얼굴을 가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후후~하고 입김을 불어 보리밥 이밥을 잘 섞어 엄마는 늘 학교가는 언니들에게 밥을 먼저 먹여 보냈다.
그리고 항상 가마솥 둘레에는
언니들의 신발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었고
누우런 도시락안에 따뜻한 밥,
그 위에 덮어진 계란 후라이를보면 늘 특혜를 받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였다.
난 언제나 뒤로 밀리는 그것이 불만이었고,
언제나 밥상 앞에 앉으면 할머니랑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전에
미리 수저를 들어선 안된다는 엄한 아버지의 교육에
선듯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었다.
그 의문은 내가 학교를 다니고 부럽던 호사를 누리고서야 비로서 알게 되었다.
학교는 십리 밖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린 아이들로선 등하교하기 힘든 거리이고 시간에 늘 시달렸다.
그래서 늘 새벽밥을 해 등 떠밀리다시피 미리 아침을 먹고 가는것이었다.
그나마 엄마가 학교가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추운날 마당에 뒹구는 신발을 가져다 따뜻하게 데워
발시리지 않도록 신발을 아침마다 선사 해 주는것...
가끔은 급해서 부엌 아궁이 곁에 두었다가 불에게 습격을 당해
단벌신발을 태워 울면서 미운신발을 할 수없이 그냥 신고 가기도 했다..
학교가기 챙피해서 오솔길을 가다말고 뒤돌아
다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던 그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사랑표 신발이였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8살의 나는 그래도 가끔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실려서
등교하는 호사도 누리고
동네의 같은 친구가 부러워하는 모습을 뒤로 하며 뿌듯해하기도 했던것같다.
그렇게도 사소한 것에 난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지금이야 아파트며 단독주택이라해도
신발이 추운 밖에서 떨고 있는 일이 없으니
추운날 차가운 신발과 그로 인해 발시린 기억이 그다지 없을 것이다.
그 옛날은 왜 그렇게도 유난히 춥고 힘들었는지...
부모의 자식사랑..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사랑..
그 사랑을 받은 덕분에 나 또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욱 지극해진 것 같다..
장사익 - 찔레꽃
녹색지대 - 사랑을 할거야
한경일 - 내 삶의 반
이선희 -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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