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하면 부모님의 사랑이 제일이겠지만,
저에게는 부모님의 사랑에 버금가는....
제 생애 버팀목이 되고, 세상에 살아갈 힘을 준....
20년 동안 지켜온 좋은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서울이란 특별시에 사회 초년생으로 첫발을 디디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회사 기숙사에서 있으면서 모 의류 회사에서 일하면서
고생고생하고 있던 참에..
제 일하는 모습을 평소 지켜보시던...그회사의 담당 에이젠트의
팀장이셨던 그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을 잘해 준다며...무역 회사로 소개를 해 주셨고,
무역 회사에서도 일을 잘 해 준 탓인지...
그 무역회사의 만류를 뒤로하고 저는 그 분이 있는 에이젠트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에이젠트엔 기숙사가 없는 탓에 전 자취방을 구해야 햇고,
그때 당시 시골 집에 월급을 일부 보내고 들어둔 적금이 만기도 채
안되고 해서 방 얻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아시고, 그 회사 사장님께 제 신용 보증을 서고,
전세방 얻을 돈을 차용해 주셨습니다.
누구에게 보증을 선다는게 쉽지 않을....저로서는 할 수 없을...
그런 보증을 서주신 덕에 전 홀로 생애 처음으로 자취란걸
그것도 서울 특별시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적은 돈에 맞춰 방을 얻었는데...지금은 거의 사라진...
이문동(도선생이 지붕위를 뛰어다닌다는...)에 얻엇는데.
자취 첫날 부터 연탄 가스에 질식하고,그러기를 대여섯 차례를
거듭하고, 비가 오면 천정 여기 저기서 비가 새서 밤에 잠도 못
이류고 새는 비를 피해 밤을 꼬박 새우기가 일쑤였습니다.
자취 한 달 만에 살이 무려 15Kg 이나 빠지고,건강에 이상까지
생겻습니다.
그런 제게 등산광이던 그 분은 등산을 권유해서 저도 산악회따라
암벽가지 마스터하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그 분 부인은 김치며...마른 반찬이머 보내 주셧고,
저희 시골 부모님도 농사지으신것으로 조금은 고마움을 표시하곤
햇습니다.
그 분과 한 회사에서 무펴 7년이란 세월을 같이 하던 참에 전
결혼을 하게 되어서 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년중 90%를 외국에서 채류하면서 근근히 지금도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그 고마운 분!!!
자칭 제 보호자라고 하면서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 상의해 달라는
그 분을 제가 이 넓은 사회에서 만난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저는 스스로에게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사랑를 못 받은 그 분이 저에겐 아빠같은데 ...
그 분은 마흔이 넘은 제가 아직도 어리기만 해 보인다고 하네요.
제가 살아 숨쉬는 날까지 결코 잊지 못할 좋은 분이기에
영원히 고마움을 잊지않을 것이고, 저도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 분의 보살핌 덕에 저는 별명이 지금도 공주병이랍니다.
제가 가장 힘들때 가족보다 가까이서 힘이 되어 주셨던 그분께
영재님의 목소리를 멀리 계신 그 분께도 전해 주세여.
늘 건강하시고, 감사한다고...
두서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그 분이 산에가면 부르던 노래 꼭 듣고 싶네여.
남 진......목화 아가씨
최 무룡....외나무 다리
진 송남....덕수궁 돌담길...
건강 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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