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모두 만나셨나요?
김영철
2008.02.22
조회 27
1972년 겨울방학
부산에서 올라온지 얼마안된 그때 우리집은 경기도 시흥군 서면
광명리 광명시장안에 있었다.
지금의 광명시다.

개발이 한창이던 그때 광명은 사방에 택지로 조성된 공터가
지천이었고 그 공터는 우리들의 축구장이나 놀이터로 훌륭한
역활을 했다.
밥만 먹으면 몰려나와 큰 돌이나 버려진 가구등으로 골대를
만들고 추위에 아랑곳없이 왼종일 공을 차고 놀았다.

시들해지면
대부분 친구들의 부모님이 장사하고 있는 시장을 돌아치며
이것 저것 얻어먹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게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노는데 정신이 푹 빠져 있을때였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방학숙제도 없었다.
참으로 태평성대를 누리던 그즈음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우리집은 그때 여러개의 상가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맨 끝상가에
할아버지 한 분이 이사를 오셨는데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몇일후
어머님이 나를 그 할아버지 집으로, 아니,방으로 부른것이 옳았다.
왜냐면,상가는 쭈~ 욱 방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을 차다가 씩씩거리며 들어서는 나에게 어머님은 공손하게
인사 할것을 말씀하시는데 그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썩 유쾌하지 못한일이 생길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고 그것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 고놈, 참 영특하게 생겼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이어 어머님의 열기에 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 철에이~~ 이 할아버지가 동경제대 나오신 훌륭한 분이란다"
"앞으로 니 한테 마 천자문을 갈차 주실끼다 열심히 잘 배우도록
하그라, 게으름 피지 말고 단디 해라 알았제"

이 무슨 청천벽력!1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두분의 야합으로 비로소 나의
태평성대는 끝나고 고난의 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님은
방학 남은 날짜동안 천자문을 다떼고 책걸이를 걸판지게 하자고
그래서 주변에 아들의 영특함을 알리고 할아버지는 긴가민가 하는
주의 사람들에게 동경제대를 유학하신 그 지적 우수함을 입증하자는
두분의 의기투합에 저는 하루에 40자를 외워야하는 고단한 날들이
시작 되었습니다.

하늘~ 천, 따지 검을~현, 누루~ 황....으로 시작하여 이끼 야 까지
저간의 우여곡절이야 각설하고.
어머님의 바램대로 그해 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우리 동네
시장골목에선 떡과 막걸리,머리고기 등으로 푸짐한 책걸이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훗날, 어머님 말씀에
그 할아버지는 충남 예산의 큰 지주집 외아들로 동경제대를
유학한 인텔리였는데 6.25때 지주란 이유로 당신이 숨어 지켜보는
가운데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합니다.

그후
전국을 유랑하듯 떠돌다 우리집에 세들어 살며 세상 사는 맛을
조금 알았다며 헛헛해 하시던 그분.
나를 유난히 귀여워 하시며 맹자의 군자삼락 중 세번째인

" 천하에 영재를 얻어 가르치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하시며
과분한 칭찬으로 용기를 주셨던 그 할아버지는 오래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무엇에 홀린듯 그렇게 치열하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셔서 일찍
문리가 트이게 해주셨던 할아버지...

장년이 된 이제야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것 같습니다.
내 마음속에 진정한 선생님으로 자리잡은 나만의 선생님.

이 영재 선생님!!
비록, 이곳에는 당신의 핏줄 하나 남기지 못하셨지만
그곳에서
모두 만나셨나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나만의 선생님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선생님 가족과 함께 편히 쉬십시오.

// 하늘나라 고운님 //

### 영재님과 동명이인 인것이 참 아이러니 하네요
읽어 주신다면 그 분이 하늘나라에서 나마
세상에 소풍처럼 다녀 왔노라고 즐거워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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