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기들 낳고나면 산후조리원으로 많이들 갑니다.
이십여년전 산후조리는 거의 친정몫이었지요.
저는 어머니가 계셨지만 몸이 약해 항상 편찮으셨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저의 산바라지를 해 주셨답니다.
남자가- 그것도 친정아버지가 딸의 산바라지를 해 준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버지는 동대문 재래시장에 가셔서 가물치도 사다가
뽀얗게 다려 주셨고 피조개도 구해다가 미역국도 끓여주셨지요.
고기국물만 먹으면 질린다 하시며 미역국물을 이것저것으로
바꾸어가며 제 입맛을 찾아주셨지요.
갓난아기 관리하는게 여간 힘든일이 아닌데도 항상
눈가에 웃음을 담고 목욕부터 배변처리까지 모두를 해 주셨지요.
아버지는 출근전 나의 식사를 모두 챙겨놓고 가셨고
퇴근 또한 칼퇴근을 하셨지요.
몇년후 내가 또 딸을 낳았을때~
병원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어요.
아마 손자를 많이 원하셨나봅니다.
많이 아주많이 서운하셨다네요.나중에 알았지만...
저는 또 아버지의 산후조리를 받아야 했지요.
큰아이와 세살 터울이라 동생에대한 질투가 심했어요.
아버지는 두 손녀들 돌보시느라 또 내 산바라지 하시느라
그 흔한 낮잠한번 주무시지 못하고 우리가 잠든사이를
이용해 꾸벅꾸벅 조는것으로 낮잠을 대신하곤 하셨지요.
지금은 내가 신생아실에서 다른아가들을 돌보고 있지요.
아기만 보는것도 많은 주의가 필요한데 아버지는
내 산후조리와 우리 두 아이들을 보살펴 주셨으니 얼마나
몸과 맘이 힘드셨을까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겁니다.
지금 고인이 되신지 9년~
머지않은 날 나도 우리 딸아이의 산후조리를 해 주어야
할텐데 글쎄 우리 아버지만큼 잘 해 줄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네요.
아버지의 산후조리를 받아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지금 살아계셔서 편찮으시다면 병간호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건만 한마디의 말씀도 남기지 않으신채 허무하게
어느날 갑자기 편안히 가셨답니다.
아버지의 진한 사랑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
이세상 둘도 없는 귀한 사랑
저는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우리아버지를 자랑 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크게 외칩니다.
아버지!
진짜루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합니다.
신청곡:이재훈~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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