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아버지 하시던 양복점 에는 늘....
손정희
2008.03.18
조회 46
영재님!!!
봄내 작가님!!!

매번 주시는 숙제는 저를 꿈많았던 소녀시절로 가게 했다가
또 코흘리개 시절로 가게도 해주시네요.
이렇게 숙제 하는시간에는 저도 모르게 타임머신을 타고~~~~~
암튼 감사합니다...^*^

한 40여년전 기억이라 조금은 가물거리지만 더듬어서 오늘도 초등학교 5~6학년 학생으로 돌아가보렵니다.

그시절 우리가족은 부산 범내골 이라는 약간 산동네에 살았는데
아버지께서 동네 시장 안에서 조그만 양복점을 하셨어요.
그때는 요즘과는 달리 양복도 맞춤으로 해입으셨고 남방,와이샤쓰도
전부 맞춰서 입으셨거든요.
아버지 양복점 앞에는 큰 전파사가 있어서 시장길을 오가며 가요와
뉴스,연속극 등... 들을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울아버지는 자그만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엄청 큰 건전지를
고무줄로 칭칭 감아 선반위에 놓고 들으셨죠.
학교갔다가 집에 올라가며 아버지 양복점에 꼭 들리면
울아버지 늘~~ 가게앞에서 팥죽을 파는 할머니께 죽한그릇 사서
제게 먹고가라 하셨지요.
아버지에게는 라디오가 아주 특별한 존재였죠.
하루종일 서서 양복 재단 에서부터 미싱일까지...
늘~~울아버지의 귀에는 연필이 꽂혀 있었고
아버지의 손가락 사이에는 "쵸크" 라고하는 둥근세모 모양의 흰색
분필같은것 으로 양복의 천위에 본을 그리곤 하셨어요.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흥얼흥얼 따라 부르시고
연속극이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시곤 하셨죠.
또 뉴스를 들으시며 세상돌아가는것 도 너무 마니 아셔서
아버지 별명이 만물박사 셨어요.
하지만 우리가족에게 라디오는 좀더 특별했답니다.
궁금하신가요???
궁금하시다면 궁금증을 풀어 드려야지요..ㅋㅋ

울큰오빠가 어려서 부터 운동을 아주 잘했는데
중학교때까지 육상선수로 뛰면서 전국체전에 나가서도 꼭 입상하고
그랬던것같고...
고등학교 때인지 중학교때인지 잘몰라도 축구를 시작해서
축구선수로 뛰게 되었지요.
어느날~~청소년 국가대표선수로 선발이 되어서
친선경기 인지 뭔지 한다며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오빠 덕분에 우리 부모님 생전처음 서울 김포공항에 배웅하러
다녀오셔서 한달넘게 동네분들께 자랑 하셨더랬지요.
저도 울오빠가 넘~~자랑스러웠으니깐요.
태극마크를 가슴에 부친 멋진양복을 입은 오빠와 김포공항 입구에서 당당하게 사진한장을 찍으신 부모님!!!
사진을 보니 두분다 입이 귀에 걸리셨더라구요.
그렇게 울오빠 부모님께 기쁨을 주셨지요.

그리고 몇년후 국가대표 선수로 뽑혀서 오빠가 외국으로 자주
나가서 대회를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메르데카배 축구대회 였던가???
암튼 그때는 축구 중계방송이 엄청 인기였지요.
울오빠가 뛰게되는 축구대회는 우리가족 뿐만아니라 온동네가
축제 분위기가 되곤 했지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당시에 이광재 아나운서 분인가?
정말 축구중계방송 환상적으로 잘하셨어요.
티비가 흔하지 않던시절 이라 라디오로 듣기만 헀어도 그분의
중계방송을 들으면 꼭 시합을 보는듯 생동감이 있었답니다.
"드로인~~~ 길게 패스해준 볼을 요리조리 ㅇㅇ선수가 골대를 향해
드리볼 하고 있습니다." 하다가
"ㅇㅇ선수 헤딩~~~ 슛~~~~꼴~~인~~~~~" 하면 우리는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렸죠.

근데 울오빠는 우승한적도 많았지만 운이 따라주질않아서 이름있는
국가대표 선수는 되지못했어요.
시합나가서 상대편 선수들이 반칙을 마니해서 크게 다친적도 많았고 ...
오빠가 다쳤다고 라디오에서 방송이라도 나오면 우리는 얼마나
안타까웠던지...ㅠㅠ
티비 처럼 볼수있는것도 아니라..그저 갑갑했죠.
하지만 외국에서든 여기서던 축구중계방송 할때면 온가족이 라디오
앞에 모두모여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곤했죠.
울오빠는 그래서 오랫동안 축구계에 머물지 않으셨어요.
지금 꽤 잘나가는 감독님들과 예전에 같이 축구 햿었지만...
조금 일찍 축구에서 은퇴하고 직장생활 하셨지요.
그당시 우리가족에게는 빛이 되어준 울오빠 랍니다.
울아버지 늘~~트랜지스터 옆에두고서 아들 나오는 축구중계방송
들으시며 골이 들어가면 막~~~박수치시고..
골이 들어갈뻔하다가 안들어가면 무릎을 탁 치시며
"허~허~ 그참" 하시며 혀를 끌끌 차시곤 하셨지요.
울오빠 덕분에 저는 일본에서 오빠가 사온 쵸콜렛도 먹어보고
예쁜공주 그림있는 자석필통도 써보고...
글구 코끼리 인형인데 건전지를 넣으면 코끝에서는 방울이 딸랑거리고 앞발은 드럼을치고 뒷발은 큰북을 쳤던 신기한 인형!!!
저 어릴때 한국에는 그런 장난감이 없었을때라 친구들에게
인기가 짱~~~조았죠.
쵸콜렛도 한토막씩 잘라서 친구들 쭉~~세워놓고 입에 넣어주곤
했는데....
울오빠 덕분에 어렸을적 저는 라디오 속에서 또다른 오빠를 만났고
축구 중계방송을 들으며 축구용어도 한두개는 알게 되었지요.
벌써 40여년전 얘기네요..
요즘 오빠가 건강이 좀 안조으시다고 해서 걱정이 됩니다.
빨리 건강이 회복 되셨음 하고 빌어봅니다.


영재님!!!
봄내 작가님!!!
숙제를 마무리 하다보니
오늘은 30여년전 일찍도 제곁을 떠나신 아버지가 무척 그리워지네요

무척이나 깔끔하시고 자식들에게 엄하셨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잘 키워주신 덕분에 부자로 여유롭게 잘 살지는 못해도
남에게 나쁜짓 안하고 착하게 제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유난히 막내에게는 덜 엄하게 하시고 이뻐 해주셨던 아버지~~~~~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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