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친구야!보고싶다..너무..
유연희
2008.04.02
조회 58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1980년대.

저희 마을엔 동갑나기 친구들 다섯명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에 합격해 여주군이 난리가 났었던 지금은 변호사를 하고 계시는 둘째형을 닮은 우등생인 종식이...초등학교내내 줄곧 반장의 자릴 놓지 않았던 아이.

울아버지의 술친구이자 산수유 나무가 많아 봄이면 노란 산수유꽃으로 둘러싸여 산수유집으로 더 알려진 상균이네
남자아이였지만 글씨를 반듯하게 썼던 아이.

우리집 바로 윗집에 살았던 담배가게집을 운영했던 윤수네.윤수 바로 아랫동생 정수가 집을 잃어 윤수네 부모님은 한동안 그 슬픔에 빠져 그늘진 얼굴로 다니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의 단짝 은숙이...종식이와 사촌간.공부도 잘했고,교내 글짓기 독후감 대회에도 두각을 보였던 아이.
아버지가 이장님이셨고 우리동네에선 잘사는 편에 속해 은숙이 덕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그당시 초등학생들의 최고 인기책은 뭐니뭐니해도 소년중앙이었다.
서울의 어마어마한 회사의 비서로 근무하는 은숙이네 큰언니가 매달 우편으로 부쳐왔기에 친구덕에 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우등생이 가장 많았던 우리 마을이었다.
도회지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오빠들이 방학이면 동네에 내려와 마을 회관에서 공부방을 운영했었다.각자 공부할 것들을 가져와 자율학습을 했기때문에 그랬던것 같다.
그리고,이장일을 보시던 은숙이 아버지가 꽤나 똑똑하셨던 기억이 난다.얼굴도 잘생기시고,마을 일을 그야말로 똑 부러지게 처리하셨던 이유였을까?
점동면내에서 "범죄없는 마을"이란 푯말을 가장 먼저 마을입구에 세워진것도 우리 마을이 처음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학교가 파하고 친구들과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가을이면 실한 무청을 뽑아 입주위가 시뻘겋게 물들 정도로 아작아작 씹어 먹기도 하고,추수후 논가운데 높이 쌓아놓은 짚둥가리에 올라가 방방 뛰기도 하고(지금의 방방이었을까?)파헤치고 들어가 낮잠을 자다가 해질녁에 집으로 부랴부랴 뛰어 온적도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건 학교에서 집까지 오려면 논가장자리에 길가 바로 옆에 큰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그누가 빠져 죽었다는 속설도 심심찮게 들리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있었기에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은숙이와 난 그 웅덩이를 지나치기전 "하나 둘 셋!"구호를 외치고는 서로 부둥켜안고 지나쳐야만 했다.혹여 바람에 날라 그 웅덩이에 풍덩 빠질까봐 그랬던것 같다.
마을에서 좀 떨어지고 논과밭의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바람이 세차게 불어댔던 이유도 있었지만 워낙에 비쩍 마르고 약한 체질이라 어린 나이에 생각해 냈던 이유가 한몸이 되어 바람과 맞서보자 식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단짝 은숙이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내내 편지도 주고 받으며 우정을 쌓아 나갔다.나의 결혼식에도 참석을 하였고,큰아이 돌때 보고는 연락이 두절되었다.서울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텐데...
은숙이 엄마의 애창곡 청춘이란 노래를 (언젠가 가겠지..푸르른 이청춘..."을 초등학교때 배웠다.고향이 어디시며 외할머니의 얼굴도 지금도 기억이 나니...은숙이란 친구는 내겐 둘도 없는 친구다.

그 당시 인기가 절정이었던 배우들이 있었다.
성이 같단 이유로 은숙인 정윤희씨를 응원했고,난 유지인씨를 응원했었던 유치한 추억마져 꼬리에 꼬리를 물어 버리니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한층 더 하다.
기억하기도 좋은 나보다 딱 한달 늦은 그녀의 생일.매년 음력 3월3일엔 친구의 얼굴이 아른아른 거린다.

종식아..

상균아...

윤수야....

탈렌트 전인화씨를 많이 닮았던 은숙아!

이젠 눈물겨운 그리움이 내 안에 차오르려 한다.

어쩌니.............................................??



*한경애"내가 부를 이름은"
*임성훈"시골길"
* "그리움만 쌓이네"
*김범룡&박진광"친구야"
"아낌없이 주는 나무"유년시절의 기행"
*정윤희씨 노래 "?'(기쁨이 넘칠 때 한마리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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