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그대는 내 운명
정성미
2008.04.10
조회 53
언니의 글을읽고 눈물이 넘 흘러요
한꺼번에 받은 사랑이니 더 가슴아팠겠죠
안돼~ 가지마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거야
그대목엔 계속 눈물이 흐르네요
사랑하는 아내를 딸을 두고 떠난
그분은 어찌 가셨을까요

제친구 동생도 백혈병으로 5년째
투병중인데 넘 힘들어해요
본인도 가족들도 가끔은 생명의 끈을
놓았음 할때도 있어요

그 친구 올케는 연애중에 발병이 되었는데도
친정 식구들에게 숨기고 결혼을 해
딸아이를 낳았답니다

인간 승리 사랑의 승리랄까
그치만 힘듬이 넘 커요
그 친구 동생부부에는 더 큰 행복이
왔음해요

선배님과의 좋은시간 되시길 바래요
선배님의 상처도 아물었음 좋겠구요




황덕혜(hdh1956)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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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 글라스 락에 담겨진 다섯 종류의 김치가 볼수록 흐믓 해서다
>
> 후다닥 해 치운 솜씨가 살림 경력 26년 차 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 저녁밥 두공기 먹어 치운 딸내미 "힝~~저녁 많이 먹으면 살찌고 잠 오는데...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 아이구~~~머리야~~ 무수리는 이래서 슬프다.
>
> 공개적으로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주경님~~ 어렵게 당첨된 옆자리, 문자 보내오며 살가운 정 느끼게 했던 손정희님~~~~~
> 너무 감사 하다고 이자리 빌어 인사 드릴게요
>
> 4월 16일 부터 23일 까지 함께 동행 해 줘야 할 약속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
> 때론 삶이 영화나 소설, 어떤 매개체의 예술 보다 더 처절 하고 처연 할 때가 있습니다
> 다소 진부 하고 신파로 흐를까 염려 되는 부분도 있지만 서툰 글솜씨에 진심을 담아 보렵니다
>
> 이선영 언니.
> 대학 시절 나보다 한학년 위 같은 과 선배였다
>
> 신입생 환영회 때 이상하게 나는 이 언니가 제일 눈에 들어왔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언니도 나를 본 순간 맘이 설레더란다
>
> 이 언니를 사랑한 남자 선배...
> 그는 복학생 으로, 신입생으로 들어온 언니를 '너는 내여자' 라며 공공연히 학교에 소문을 뿌리고 다녔다
>
> 그들의 사랑은 우리 과는 물론이고 학내에서 유명세를 달고 다녔다
> 잔디에 앉을 때도 '여자는 엉덩이가 차가워선 안된다'며 손수건 깔아 주고 해질녁 햇살이 여자 피부에 안 좋다며 책으로 손으로 얼굴 가려 주고 뜨거운 국물 음식은 불어서 적당히 식혀 주고...
>
> 그렇게 4년을 옆사람들 닭살 돋을대로 돋워가며 사랑했고 양가의 거센 반대 무릅쓰고 결혼했다
>
> 홀 어머니 누나 셋 외동 아들...
> 결혼 1년 반 만에 낳은 첫딸
> 그리고 결혼 7년 만에 찾아온 '백혈병' 병마...
> 인간미 넘쳤던 선배의 병 소식은 우리를 페닉 상태에 빠뜨렸다
> 모금 운동... 1년 동안의 병원 생활...
> '아직 당신 한테 내사랑, 백분의 일도 못 전했는데... 미안하다, 미인하다 선영아, 미안하다..."
> 그렇게 세상의 모든 인연의 끈을 놓아 버렸다
>
> 한남자가 떠난 덩그런 빈 자리.
> 우주 였던 남편을, 생떼 같은 아들을, 유일한 남동생을, 너무나 처절하게 울던 자신을 쏙 빼 닮은 딸의 아빠 자리...
> 그 빈자리는 너무도 공허하게 컸다
>
> 핏기 없는 말간 얼굴로 상주 자릴 지키고 있던 언니는 30대의 '청상' 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버렸다
>
> 영안실을 찾아온 나에게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면서 "왔어? 그 먼길을? 너도 시어머님 수발 든다던데...그래도 너 많이 기다렸어. 나, 우습지? 그냥 니 생각만 나더라... 덕혜야....나...과부됐다... 믿어지니? 너? 나...그사람 끝내 놓쳐 버렸어... 그 아까운 사람....나를 안 만났으면 저렇게 안 됐을 우리 xx씨...보고싶다. 벌써 이렇게 보고 싶은데... 나, 앞으로 어떻하니? 덕혜야...나 어떻게 살까?"
>
> 꼭 잡아준 손끝에 와들와들 떨어 대는 그녀의 애처러운 몸짓이 그대로 전달 되어왔다
>
> 이윽고 하관때, 그 작은 몸 어느 곳에 그렇게 큰 소리가 잠재 되어 있었던 걸까?
> "안돼~~ 가지마~~~~절대로 용서 하지 않을거야~~"
> 온산이 쩌렁 울리도록 한맺힌 한마디 쏟아 놓고 언니는 맥을 놓아 버렸다
>
> 이윽고 찾아온 시어머니의 치매...
> 차마 입에 담을수 없는 처절한 욕들...
> 시집 식구의 싸늘한 이죽거림. 친정 식구의 당혹스런 무관심..
> 그렇게 3년을 고생 시키다 시어머님도 사랑하는 아들 곁으로 떠났다
>
> 그시절, 나의 고생도 절정을 치닫고 있어서 만나고픈 생각은 늘 갖고 있었으나 행동으로 옮기기엔 주위 여건이 녹녹치 않았다
>
> 1989년 봄, 어느날...
> 저녁에 한통의 전화가 옸다
> "덕혜야~~ 선영이야~~고생많지? 나...내일 중국 가...딸래미랑..그냥..힘내서 살아 보려구...이곳엔 다신 안올거야...자리 잡으면 연락 할께 넌 꼭 와줘. 잘있어...그래도 너에겐 알려야 할것 같아서.."
>
> 그 전화를 끝으로 어디에서도 언니의 소식을 접할길 없었다
>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의 빚의 무게는 점점 커져갔다
>
> 2003년 겨울, 직장에서 중국 출장이 떨어졌다
> 베이징 공항에 내려 마중나올 사람을 찾느라 휴대 전화를 하고 있을 때 였다
> 누군가 조심스레 내 등을 두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왔다
> "혹시~~황덕혜씨? 대구분? 대학을 ...."
>
> 마주 바라 본 우리는 가방이고 뭐고 다 팽계치고 와락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
> 전화 하는 목소릴 듣고 나인줄 알았고 언니도 외국 바이어 마중 나온길 이라했다
> 며칠동안 꿈에 내 모습이 보여 그리운 맘이 너무 컸다며 울먹이던 언니.
>
>
> 살아 있으면, 살아 숨쉬고만 있으면..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되나보다...
>
> 세계를 누비는 큰 무역가가 되어 있었다
> 한점 혈육 딸, 선배 닮아 재주가 줄충하여 미국서 공부 마치고 그곳 광고 회사에 근무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면서, 자기 곁에 두면 또 허망하게 잃을것 같아 일찌감치 떼어 놓았다고 했다
>
> 그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찌르르 진한 아픔이 전해왔다
>
> 여자 혼자 몸으로 딸 하나 데리고...
> 지금 보다 더 한 규제의 공산국가 중국.
> 이만큼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 물어 보지도 않았다
>
>
> 다시는 오지 않겠다던 우리땅.
> 떠난지 20년 만에 후둘후둘 떨리는 마음을 안고 언니가 온다
>
> 상처뿐인 추억.. 12년을 함께 한 부부의 애틋한 정...
> 평생 줄 사랑 12년에 몰아서 받았다는 언니...
>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또다른 사람이 치유해 줘야 한다는것...
>
> 렌트카도 빌려 놓았고 호텔 예약도 해놨다
>
> 내가 먼저 가슴이 떨려 오는 선배 산소도 함께 가고, 두사람 그동안 쌓인 회포 실컷 풀게 두툼한 책 한권 들고 나는 저멀리 나무 밑에 앉아 시간을 기다려 줄 것이며, 곳곳에 펼쳐져 있을 추억을 캐러 대학 교정도 함께 거닐어 줄것이다
>
> 바다, 산, 음식점, 영화관, 서점...공연장...
> 언니가 가고 싶어 하는 그 어느 곳 이라도 곁에 있어 손잡아 줄것이다
>
> 아프고 시리고 깊이 패인 상처가 일주일 동안 얼마나 치유 될까만 시도 해보지 않는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란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 보며...
>
> 그 희망의 시작은 이곳으로 오겠다는 결정을 내린 언니의 마음에서 이미 진행 되어 지는건 아닐까?
>
> 올해 4월, 나는 기대에 부푼 희망을 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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