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엔 저의 아버지의 기일이 들어있습니다
벌써 서른 해의 시간이 물 같이 흘러가니
아버지의 작은 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지아비를 섬기는 아내가 되었고
내가 부모 되어야 부모 맘을 안다는 어르신의 말씀을
귀밑 흰머리 보이니 알게되는 어리석은 여식.
딸 다섯 아들인 막내동생을 끔직하게 여기셨던 2대독자 아버지
물면 날아갈 새라 그야말로 금지옥엽으로
아버지 혼자 당신 손으로 거두고 입히셨지요
남 동생 중학교 입학 하던 날 ..
저에겐 고물짜 시장에서 중고 교복을 사주어 눈물로 학교를 다니게 하시더니
남동생에겐 가장 좋은 교복으로 가죽 구두로
장만해 주셔서 아물지 않을 상처만이 가득 했으니
그저 아들 아들 하시는 울 아버지
아버지의 요 밑에 동생의 교복 바지를 주름을 잡아 깔고
주무시면 아침엔 칼날 같이 줄이 선 바지를 입혀 보내시고
겨울 신발 차갑다고 신문지에 곱게 싸 난로 옆에 세워 두시고
아침 등교 길에 신겨 보내시던 울 아버지
엄마가 없었기에 모든 것이 어슬프고 서툴지라도
부자간의 사랑은 바로 헌신 그 자체 였습니다 ..
밥 그릇에 밥풀 하나라도 남길새라
오로지 동생만을 위한 반찬들
아버지께서 해주신 감자 볶음은 세상에서 젤 맛있는 반찬이였습니다
여자는 이래서 안되고 이것도 안되고
참으로 제약이 많았던 아버지께선
남동생의 말 한마디라면 무조건 오 케이
해주시는 것도 저에겐 그토록 인색하게 하셨는지 ..
서글픔도 억울함도 토하지 못하고 가슴으로 삭히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저에게 주신 화장품 하나
너 줄라구 구루무 사왔다 ~
제 기억으론 아버지께 화장품을 받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로
알고 있었는데 ..
그 후로도 들어오시는 누가 줬다며 들고오신 연시 감 한개를
동생 오기 전에 얼른 먹으라고 주시는 겁니다 ..
아버지껜 오직 남동생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저에게 조금은 황당했지요 ..
조심스레 조금씩 아버지와 대화로 마음을 열고보니
부모로써 아버지로써 최선을 다 하지못한 미한함이 저에게 짐을 준것이
많아 냉정하실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어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형편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무렵에
아버진 아침 출근을 하셨고 그 날 오후에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4월 19일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4,19 데모 많이 했던 날
학생들 세상 떠난 날
하늘도 슬퍼 비가 온다는 날
그날 오후시간에 저는
일터에서 잠이쏟아지는데 그 잠을 못 이기고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와 동생이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아무 말씀 없이 제 손을 잡고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아버지의 밝은 웃음은 그 모습이 첨이였지요
너무도 현실 같아 놀라 일어났는데
공장아저씨의 전화 아버지가 이상하니
빨리 들어오라는 급한 목소리
돌아오는 토요일엔 동네 어르신들과 여행 가신다고 좋아라 하셨고 동생은 아버지의 봄 잠바를 장만하고 전 첨으로 용돈을 드렸는데 ..
그날 밤 한 마디 말씀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
갑자기 당한 일이라 막막한데 남동생을 보니
아버지께서 저 어린 남동생을 두고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당부 하실 말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내게 주어진 현실이 싫어 아버지께 반항도 했던
저는 아버지의 외로움을 그 땐 몰랐습니다.
남자의 등 뒤에 외로움이 묻어 있다는 것을
제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보니 이제는 알것 같네요.
라일락 꽃 향기가 온 몸에 배일 것 같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구..왜 그랬을까요 ..
이별이 슬퍼서...
정말 죽을 만큼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
이른 아침
아버지께서 마당을 쓸면서 부르시는
알뜰한 당신 그리고 두 만강
구성지게 부르시던 두 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 사공
두만강 강가에도 봄은 여지없이 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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