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울 아버지
한 완숙
2008.04.13
조회 39
4월엔 저의 아버지의 기일이 들어있습니다

벌써 서른 해의 시간이 물 같이 흘러가니

아버지의 작은 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지아비를 섬기는 아내가 되었고

내가 부모 되어야 부모 맘을 안다는 어르신의 말씀을


귀밑 흰머리 보이니 알게되는 어리석은 여식.

딸 다섯 아들인 막내동생을 끔직하게 여기셨던 2대독자 아버지

물면 날아갈 새라 그야말로 금지옥엽으로

아버지 혼자 당신 손으로 거두고 입히셨지요

남 동생 중학교 입학 하던 날 ..

저에겐 고물짜 시장에서 중고 교복을 사주어 눈물로 학교를 다니게 하시더니

남동생에겐 가장 좋은 교복으로 가죽 구두로

장만해 주셔서 아물지 않을 상처만이 가득 했으니

그저 아들 아들 하시는 울 아버지

아버지의 요 밑에 동생의 교복 바지를 주름을 잡아 깔고

주무시면 아침엔 칼날 같이 줄이 선 바지를 입혀 보내시고

겨울 신발 차갑다고 신문지에 곱게 싸 난로 옆에 세워 두시고

아침 등교 길에 신겨 보내시던 울 아버지

엄마가 없었기에 모든 것이 어슬프고 서툴지라도

부자간의 사랑은 바로 헌신 그 자체 였습니다 ..

밥 그릇에 밥풀 하나라도 남길새라

오로지 동생만을 위한 반찬들

아버지께서 해주신 감자 볶음은 세상에서 젤 맛있는 반찬이였습니다

여자는 이래서 안되고 이것도 안되고

참으로 제약이 많았던 아버지께선

남동생의 말 한마디라면 무조건 오 케이

해주시는 것도 저에겐 그토록 인색하게 하셨는지 ..

서글픔도 억울함도 토하지 못하고 가슴으로 삭히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저에게 주신 화장품 하나

너 줄라구 구루무 사왔다 ~

제 기억으론 아버지께 화장품을 받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로

알고 있었는데 ..

그 후로도 들어오시는 누가 줬다며 들고오신 연시 감 한개를

동생 오기 전에 얼른 먹으라고 주시는 겁니다 ..

아버지껜 오직 남동생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저에게 조금은 황당했지요 ..

조심스레 조금씩 아버지와 대화로 마음을 열고보니

부모로써 아버지로써 최선을 다 하지못한 미한함이 저에게 짐을 준것이

많아 냉정하실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어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형편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무렵에

아버진 아침 출근을 하셨고 그 날 오후에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4월 19일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4,19 데모 많이 했던 날

학생들 세상 떠난 날

하늘도 슬퍼 비가 온다는 날

그날 오후시간에 저는

일터에서 잠이쏟아지는데 그 잠을 못 이기고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와 동생이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아무 말씀 없이 제 손을 잡고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아버지의 밝은 웃음은 그 모습이 첨이였지요

너무도 현실 같아 놀라 일어났는데

공장아저씨의 전화 아버지가 이상하니

빨리 들어오라는 급한 목소리

돌아오는 토요일엔 동네 어르신들과 여행 가신다고 좋아라 하셨고 동생은 아버지의 봄 잠바를 장만하고 전 첨으로 용돈을 드렸는데 ..

그날 밤 한 마디 말씀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

갑자기 당한 일이라 막막한데 남동생을 보니

아버지께서 저 어린 남동생을 두고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당부 하실 말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내게 주어진 현실이 싫어 아버지께 반항도 했던

저는 아버지의 외로움을 그 땐 몰랐습니다.

남자의 등 뒤에 외로움이 묻어 있다는 것을

제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보니 이제는 알것 같네요.

라일락 꽃 향기가 온 몸에 배일 것 같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구..왜 그랬을까요 ..


이별이 슬퍼서...




정말 죽을 만큼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



이른 아침

아버지께서 마당을 쓸면서 부르시는

알뜰한 당신 그리고 두 만강

구성지게 부르시던 두 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 사공

두만강 강가에도 봄은 여지없이 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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