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동행과 해후...
양미애
2008.04.18
조회 17
덕혜님!
선영 언니와 서울에서 눈물과 콧물과 웃음이 범벅이 된 해후를 잘 하셨다니 너무나 기쁘네요.
kbs홀에서 국립국악단 연주회가 있어 아이들과 갔다가 밤늦게 들어와 긍금해서 들렀어요.
사람들은 왜 언제나 자기 아픔 밖에 보지 못하는 걸까요?
정작 남편을 잃은 선영언니가 제일 힘든 사람인데 그 숱한 세월이 지나고도 보듬어주지 않는 가족들이 속상하고 쬐끔 미워지네요.
속 얘기를 하지면 전 맏딸입니다.
9,7,5살 되던 구정이 막 지나고 아빠가 세상을 등지셨을 때를 엄마가 말씀하시는데 수돗가에 가서 걸레를 빨아오시겠다던 엄마의 말씀에 "이사람아 나 지금 가는데 여기 계시게"였습니다.
사람이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일요일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녀오던 길이었지요.
돌아가신 아빠를 뵙는게 얼마나 무섭던지 살아생전에 저를 유독 예뻐하신 분이었습니다.
주위 분들이 정을 떼려고 한다는 위로를 건넸습니다.
정월의 눈발이 내리던 날 아빠의 장례식을 치루는데 철모르는 어린 자식들은 상복도 입히지 않았고 그런 우리가 불쌍했는지 동네 언니가 귀하던 사탕을 입에 넣어 주었어요.
우린 아무것도 모른 채 상여뒤를 줄레줄레 따라갔습니다.
하얀 상복을 입을 엄마를 양쪽에서 부축하던 교회 분들과 무덤가에서 혼절했던 엄마의 기억, 이것이 남편이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무척 힘든 우리에게 엄마는 말씀하십니다.
돈이 많았다면 김서방이 저렇게 좋은 남편이고 아빠이겠냐 젊은 시절 조금 더 고생한다 생각해라 자리지고 누워있어도 남편의 자리는 크단다.
엄마는 지금 67세,
사람들은 얘기합니다.
부모복이 없어서 지금도 엎었다 뒤집었다 고생한다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좋은 엄마가 남아주신게 아빠의 선물이라고.
환갑잔치를 해드렸어요.
저만 결혼을 했지만 세상사 모르는 일이라 고희가 되어서 잔치를 못하면 한이 될까봐.
잔치가 끝난 후 감사헌금을 드리며 썼습니다.
"엄마가 내 엄마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선영언니가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딸과 함께 수저 두개, 젓가락 두개를 놓고 식사를 준비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다음엔 손자 손녀들의 그릇까지 준비하시고 남은 날들을 슬픔이
아니라 행복의 그림자로 물들이시길 기도해요.
덕혜님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즐거운 날이 계속되시길,
또 가족들이 누구의 탓도 아닌 일로 미움을 품고 살지 않기를 더욱
기도할께요.
남의 슬픔을 보고 더 깨닫는 내 마음이 옹졸하다 싶지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신랑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야겠어요.
오늘도 어쩌고저쩌고 살짝 긁어줬거든요.
늘 행복하세요. 선영언니도요.
넑두리 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
황덕혜(hdh1956)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
> 몇분의 글에서 과천의 열기가 그대로 전달 되어 지는것 같네요~~
> 흥에 겨운 만남...모두 즐거우셨죠?
>
> 이 열기에 자칫 제글이 서늘함을 제공 하지 않을까란 우려를 하면서... 그래도 혹여 '만남' 후기를 기다리는분도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선영 언니와의 동행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
>
> 예약해 둔 렌트카와 기사 아저씨가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켜 집 앞에 왔다
>
> 경황 없을 언니 대신 선배 산소에 차릴 과일 술 떡을 정성 담아 시장 바구니에 담았다
>
> 인천 공항 가는길...
> 큰 상처 싸안고 차마 혼자 어쩌지 못해 외국으로 떠돈지 20년...
> 일단 서울로 오고 보라고 부단히 언니를 채근한게 나였다
>
> 과연 잘 한 일일까? 상처 덧내서 보내는건 아닐까?
> 해답을 알길 없는 갑갑함에 머릿속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다
>
> 하지만 이미 화살은 과녁을 향해 달려 오고 있다
>
>
> 핏기 없는 말간 얼굴은 늘 변함없다
> 기내 가방 하나 , 흰 티셔츠에 청바지, 어깨에 걸친 숄드 백, 머리위로 넘긴 썬그라스....짐의 전부였다
>
> "뭐야? 언니~~~이게 다야?"
> "응! 왜? 집이라도 끌고 나타날줄 알았니?"
>
> 껴안고 등 토닥여 주면서 주고 받은 첫 인사말이다
>
> 준비 된 차로 언니를 안내했다
> 사전에 양해를 구해 논 기사 아저씨, 썬그라스로 자신의 시선을 가리고 꼿꼿이 앞만 바라봤다
>
> 한참 말없이 창밖 풍경만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던 언니...
> 이윽고 어깨 출렁이며 기어이 울음을 쏟아냈다
>
> 무심한척 앞만 바라 보고 있어도 인체의 눈은 180도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의 영상을 정확히 전달 각인 시켜 준다
>
> 켜켜이 쌓인 한의 무게, 찌들고 눌러 붙은 아픔의 딱지들...
> 어떤 방법을 쓰든 씻어내 새살을 돋게 만들어야 한다
>
> 한참을 그렇게 맥놓고 울더니 " 덕혜야~~지금 우리 어디 가니?"한다
> "형부 한테"
> "형부? 그게 누군데?"
> "언니 신랑~~ 이제 언니는 나에게 정식 언니 되었으니 당연히 선배가 형부 되는거잖아 왜? 억울해?"
> "............................" 말없이 또 눈물 바람이다
>
> 밝은 햇살 아래 공원 묘지는 온갓 꽃향기 속에 고즈녁 했다
> 언니는 남편 산소를 찾지 못했다
> 20년 동안 새로 생긴 묘역이 어디 한 두 군데 일까?
>
> 전화로 미리 번호를 알아둔 나는 언니 손을 잡고 선배 묘 앞에 섰다
> 단출하여 도리어 쓸쓸해 보이는 음식들을 흰종이 깔고 차렸다
>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
> 종이컵 하나 가득 붓고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해요 선배'...
> 두번 절 올리는 동안 회한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
> 장승 처럼 미동도 없이 서있던 언니...
> "여보, XX씨.. 제가 많이 늦었죠? 이렇게 훌쩍 찾아 오면 되는거였구나~~ 이렇게...이렇게... 당신 거기 누워 있는 모습 확인하니 내곁에 없는것 맞네...그렇구나...정말 당신 이세상에 없는것 맞구나..."
>
> 에드립 하듯 혼자 웅얼 거리더니 갑자기 긴 울음 토해 놓으며 허공에 두팔 벌리고
>
> "여보야~~나 한번 안아주라~~ 응? 당신 퇴근해 오면 현관 앞에서서 이렇게 두팔 벌려 안아 줬었잖아...'잘있었어? 우리 선영이. 오늘 종일 당신 보고싶어 눈가가 다 짓물렀네' 이러면서 안아 줬었잖아~~~ 당신 그 목소리, 당신 그 품맛 못잊겠어. 여보야~~잠깐만 나와서 날 보듬어 주고 가~~~~~"
>
> 돌아서 내려 오는 내 등뒤로 언니의 처연한 울음이 길게 꼬리 끌며 따라온다
>
>
> 호수앞 벤취에 털썩 주저 앉으며 어떻게 해 볼 도리 없는 무력감의 내 자신이 문득 싫어진다
>
> 직장을 그만 둘때 까지 중국 출장을 그후로 9번이나 더 갔다
> 언니의 성화에 못이겨 세번 그집 신세를졌다
>
> 언니집을 방문 했던 첫날.
> 그날의 충격을 나는 내내 떨치지 못했다
> 아파트 거실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책들...
> 씻고 있는 언니 대신 찻물 끓이려 씽크대 문을 열었더니...맙소사!
>
> 수저 한벌, 밥공기 국그릇 하나, 냄비 하나, 찻잔 하나, 물컵 하나..
>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
> 언니의 신혼집을 들랑거려 봤던 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 정신이 혼미해 지면서 절대로 알아선 안될 비밀을 엿본것 같아 서둘러 씽크대 앞을 떠나왔다
>
> 세번 묵을 동안 언니는 단 한번도 차 한잔 밥한끼 나에게 제공해 주지 않았고 나도 단 한마디 물어 보지 않았다
>
> 끊임 없는 자기 학대, 피해망상에 자기 자신을 옭아 매고 살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
> 그냥 덮어 두면 안으로는 더 곪게된다
> 더이상 손쓸 겨를 없게 될 때 까지 방치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
> 기회 닿을 때 마다 서울서 만나자고 졸랐다
> 바늘 끝도 안 들어갈것 같더니 3년을 보채고 나서야 남편 묘 앞에 서게 된것이다
>
> 시나브로 저녁 어스럼이 내곁에 서성였다
> 산 그림자는 인식 하지 못하는 동안 빨리 짙게 와 있다
>
> 조심해 가며 언니 곁에 가보니 선배 묘를 가슴에 안고 손바닥으로 쓸어 내리며 웅얼 거리고 있었다
>
> 저렇게 하고 싶어 20년을 어찌 버텼을꼬?.....
>
> "당신 큰 누나께 이젠 자리 잡았으니 한번 놀러 오시라고 안부겸 해서 몇년전에 큰 맘 먹고 수소문해 전화 한번 넣었더니....글쎄, 첫 마디가 그동안 몇놈 잡아 먹었냐며 재수 옴 붙었다 퇘 퇘..하더니 꿈에 볼까 겁나니 다신 전화질 하지 마라데..."
>
> 잘 참고 있던 내눈에 기어이 눈물이 터졌다
>
>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오겠다고 약속 하고 우리는 대기 하고 있던 차에 몸을 실었다
>
> 호텔에 가면 왠지 이밤에 자신이 도망 가 버릴것 같은 강박감이 인다 하기에 혹시나 하고 나름 준비해둔 우리집으로 향했다
>
> 욕실에 언니가 씻을동안, 가장 한국적인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된장 끓이고 다섯가지 나물 반찬 계란 후라이 두개 부쳐 양푼이 비빔밥을 만들었다
>
> 참기름 고추장 듬뿍 넣고 밥 가득 비벼 무식하게 숟가락 두개 탁 꽂아 식탁위에 올렸다
>
> "어머, 어머...얘~~너 참 빨리 잘한다 얘~~~글구 나, 이런 비빔밥 무지 먹고 싶었어. 어머, 나 침 넘어가는 꼴 봐~~~빨리 먹자. 너무 좋아~~"
>
> 공항서 내려 나에게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많은 말을 한 순간이다
>
> 한참을 정신 없이 먹더니 나를 멀거니 쳐다 보며 한마디 툭 뱉았다
> "그때 너, 참 고맙더라"
>
> 사실 밥 생각 전혀 없었지만 손님 접대 그러는게 아니지 라는 생각에 한입 가득 밥을 물고 있던 터라 나도 그냥 멀거니 건너다 봤다
>
> "사실 중국서 손님으로 초대 한건 니가 처음이야...딸애도 내가 미국으로 건너가 만났지 내곁엔 못 오게 했었어. 왠지 그래야 할것 같아서... .내 그릇 봤을거잖아... 한마디도 안 묻더라...참 편하고 고마웠어.. 여분의 그릇이 있으면 내가 자꾸 누굴 기다릴것 같아서..지옥 같은 그 생활 못 버틸것 같아서...이 세상에 믿을건 나 혼자 뿐 이라는 생각이 무너질것 같아서....그랬어.... 남편 잡아 먹은년이 무슨 호사냐 하면서 죽기 살기로 뛰었더니 가족 없는 빈자리에 재물이 들어 오더라. 우습게도..."
>
> 그랬구나. 그런거였구나.....
>
> 정갈하게 꾸며진 요위에 두 여자가 나란히 누워 학창 시절 얘기에 콩볶고 깨 볶았다
>
> 잠들다 울다 해가며 온밤 몸 뒤척이더니 새벽녁에야 깊은잠에 빠져든 언니...
>
> 새벽, 까치발 해가며 조심조심 준비 하던 딸이 언니방 살며시 들여다 보더니 "엄마, 이모 자는 모습이 애기 같애..."했다
>
>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엄마, 냉장고 열어봐~'하기에 열어 보니 박카스 두병이 놓여 있고 포스트 잇에 글 한줄이 남겨져 있다
>
> "엄마 많이 쳐지지? 이것 한병 마시고 이모 가실때 까지 지치지 마세요~~*^^* 이모께 이쁜 예진이가 어제 밤 하교길에 사왔다고 꼭 좀 전해 주고~~~"
>
> 잠보 공주 깨워 커피 한잔 나누고 나보다 더 가슴 설레며 기다리고 있을 안동 선배 식당, 선후배 자리...그 뜨거울 해후의 장소로 언니와 동행 하려 합니다
>
> 유가속 가족들...
>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
>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