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과 해후...
황덕혜
2008.04.17
조회 76
몇분의 글에서 과천의 열기가 그대로 전달 되어 지는것 같네요~~
흥에 겨운 만남...모두 즐거우셨죠?

이 열기에 자칫 제글이 서늘함을 제공 하지 않을까란 우려를 하면서... 그래도 혹여 '만남' 후기를 기다리는분도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선영 언니와의 동행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예약해 둔 렌트카와 기사 아저씨가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켜 집 앞에 왔다

경황 없을 언니 대신 선배 산소에 차릴 과일 술 떡을 정성 담아 시장 바구니에 담았다

인천 공항 가는길...
큰 상처 싸안고 차마 혼자 어쩌지 못해 외국으로 떠돈지 20년...
일단 서울로 오고 보라고 부단히 언니를 채근한게 나였다

과연 잘 한 일일까? 상처 덧내서 보내는건 아닐까?
해답을 알길 없는 갑갑함에 머릿속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다

하지만 이미 화살은 과녁을 향해 달려 오고 있다


핏기 없는 말간 얼굴은 늘 변함없다
기내 가방 하나 , 흰 티셔츠에 청바지, 어깨에 걸친 숄드 백, 머리위로 넘긴 썬그라스....짐의 전부였다

"뭐야? 언니~~~이게 다야?"
"응! 왜? 집이라도 끌고 나타날줄 알았니?"

껴안고 등 토닥여 주면서 주고 받은 첫 인사말이다

준비 된 차로 언니를 안내했다
사전에 양해를 구해 논 기사 아저씨, 썬그라스로 자신의 시선을 가리고 꼿꼿이 앞만 바라봤다

한참 말없이 창밖 풍경만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던 언니...
이윽고 어깨 출렁이며 기어이 울음을 쏟아냈다

무심한척 앞만 바라 보고 있어도 인체의 눈은 180도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의 영상을 정확히 전달 각인 시켜 준다

켜켜이 쌓인 한의 무게, 찌들고 눌러 붙은 아픔의 딱지들...
어떤 방법을 쓰든 씻어내 새살을 돋게 만들어야 한다

한참을 그렇게 맥놓고 울더니 " 덕혜야~~지금 우리 어디 가니?"한다
"형부 한테"
"형부? 그게 누군데?"
"언니 신랑~~ 이제 언니는 나에게 정식 언니 되었으니 당연히 선배가 형부 되는거잖아 왜? 억울해?"
"............................" 말없이 또 눈물 바람이다

밝은 햇살 아래 공원 묘지는 온갓 꽃향기 속에 고즈녁 했다
언니는 남편 산소를 찾지 못했다
20년 동안 새로 생긴 묘역이 어디 한 두 군데 일까?

전화로 미리 번호를 알아둔 나는 언니 손을 잡고 선배 묘 앞에 섰다
단출하여 도리어 쓸쓸해 보이는 음식들을 흰종이 깔고 차렸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
종이컵 하나 가득 붓고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해요 선배'...
두번 절 올리는 동안 회한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장승 처럼 미동도 없이 서있던 언니...
"여보, XX씨.. 제가 많이 늦었죠? 이렇게 훌쩍 찾아 오면 되는거였구나~~ 이렇게...이렇게... 당신 거기 누워 있는 모습 확인하니 내곁에 없는것 맞네...그렇구나...정말 당신 이세상에 없는것 맞구나..."

에드립 하듯 혼자 웅얼 거리더니 갑자기 긴 울음 토해 놓으며 허공에 두팔 벌리고

"여보야~~나 한번 안아주라~~ 응? 당신 퇴근해 오면 현관 앞에서서 이렇게 두팔 벌려 안아 줬었잖아...'잘있었어? 우리 선영이. 오늘 종일 당신 보고싶어 눈가가 다 짓물렀네' 이러면서 안아 줬었잖아~~~ 당신 그 목소리, 당신 그 품맛 못잊겠어. 여보야~~잠깐만 나와서 날 보듬어 주고 가~~~~~"

돌아서 내려 오는 내 등뒤로 언니의 처연한 울음이 길게 꼬리 끌며 따라온다


호수앞 벤취에 털썩 주저 앉으며 어떻게 해 볼 도리 없는 무력감의 내 자신이 문득 싫어진다

직장을 그만 둘때 까지 중국 출장을 그후로 9번이나 더 갔다
언니의 성화에 못이겨 세번 그집 신세를졌다

언니집을 방문 했던 첫날.
그날의 충격을 나는 내내 떨치지 못했다
아파트 거실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책들...
씻고 있는 언니 대신 찻물 끓이려 씽크대 문을 열었더니...맙소사!

수저 한벌, 밥공기 국그릇 하나, 냄비 하나, 찻잔 하나, 물컵 하나..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언니의 신혼집을 들랑거려 봤던 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 정신이 혼미해 지면서 절대로 알아선 안될 비밀을 엿본것 같아 서둘러 씽크대 앞을 떠나왔다

세번 묵을 동안 언니는 단 한번도 차 한잔 밥한끼 나에게 제공해 주지 않았고 나도 단 한마디 물어 보지 않았다

끊임 없는 자기 학대, 피해망상에 자기 자신을 옭아 매고 살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그냥 덮어 두면 안으로는 더 곪게된다
더이상 손쓸 겨를 없게 될 때 까지 방치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기회 닿을 때 마다 서울서 만나자고 졸랐다
바늘 끝도 안 들어갈것 같더니 3년을 보채고 나서야 남편 묘 앞에 서게 된것이다

시나브로 저녁 어스럼이 내곁에 서성였다
산 그림자는 인식 하지 못하는 동안 빨리 짙게 와 있다

조심해 가며 언니 곁에 가보니 선배 묘를 가슴에 안고 손바닥으로 쓸어 내리며 웅얼 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하고 싶어 20년을 어찌 버텼을꼬?.....

"당신 큰 누나께 이젠 자리 잡았으니 한번 놀러 오시라고 안부겸 해서 몇년전에 큰 맘 먹고 수소문해 전화 한번 넣었더니....글쎄, 첫 마디가 그동안 몇놈 잡아 먹었냐며 재수 옴 붙었다 퇘 퇘..하더니 꿈에 볼까 겁나니 다신 전화질 하지 마라데..."

잘 참고 있던 내눈에 기어이 눈물이 터졌다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오겠다고 약속 하고 우리는 대기 하고 있던 차에 몸을 실었다

호텔에 가면 왠지 이밤에 자신이 도망 가 버릴것 같은 강박감이 인다 하기에 혹시나 하고 나름 준비해둔 우리집으로 향했다

욕실에 언니가 씻을동안, 가장 한국적인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된장 끓이고 다섯가지 나물 반찬 계란 후라이 두개 부쳐 양푼이 비빔밥을 만들었다

참기름 고추장 듬뿍 넣고 밥 가득 비벼 무식하게 숟가락 두개 탁 꽂아 식탁위에 올렸다

"어머, 어머...얘~~너 참 빨리 잘한다 얘~~~글구 나, 이런 비빔밥 무지 먹고 싶었어. 어머, 나 침 넘어가는 꼴 봐~~~빨리 먹자. 너무 좋아~~"

공항서 내려 나에게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많은 말을 한 순간이다

한참을 정신 없이 먹더니 나를 멀거니 쳐다 보며 한마디 툭 뱉았다
"그때 너, 참 고맙더라"

사실 밥 생각 전혀 없었지만 손님 접대 그러는게 아니지 라는 생각에 한입 가득 밥을 물고 있던 터라 나도 그냥 멀거니 건너다 봤다

"사실 중국서 손님으로 초대 한건 니가 처음이야...딸애도 내가 미국으로 건너가 만났지 내곁엔 못 오게 했었어. 왠지 그래야 할것 같아서... .내 그릇 봤을거잖아... 한마디도 안 묻더라...참 편하고 고마웠어.. 여분의 그릇이 있으면 내가 자꾸 누굴 기다릴것 같아서..지옥 같은 그 생활 못 버틸것 같아서...이 세상에 믿을건 나 혼자 뿐 이라는 생각이 무너질것 같아서....그랬어.... 남편 잡아 먹은년이 무슨 호사냐 하면서 죽기 살기로 뛰었더니 가족 없는 빈자리에 재물이 들어 오더라. 우습게도..."

그랬구나. 그런거였구나.....

정갈하게 꾸며진 요위에 두 여자가 나란히 누워 학창 시절 얘기에 콩볶고 깨 볶았다

잠들다 울다 해가며 온밤 몸 뒤척이더니 새벽녁에야 깊은잠에 빠져든 언니...

새벽, 까치발 해가며 조심조심 준비 하던 딸이 언니방 살며시 들여다 보더니 "엄마, 이모 자는 모습이 애기 같애..."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엄마, 냉장고 열어봐~'하기에 열어 보니 박카스 두병이 놓여 있고 포스트 잇에 글 한줄이 남겨져 있다

"엄마 많이 쳐지지? 이것 한병 마시고 이모 가실때 까지 지치지 마세요~~*^^* 이모께 이쁜 예진이가 어제 밤 하교길에 사왔다고 꼭 좀 전해 주고~~~"

잠보 공주 깨워 커피 한잔 나누고 나보다 더 가슴 설레며 기다리고 있을 안동 선배 식당, 선후배 자리...그 뜨거울 해후의 장소로 언니와 동행 하려 합니다

유가속 가족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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