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곽춘성
2008.04.18
조회 22

이웃집

(안도현)



이웃집 감나무가 울타리를 넘어왔다
가지 끝에 오촉 전구알 같은 홍시도 몇 개 데리고
우리집 마당으로 건너왔다


나는 이미 익을 대로 익은 저 홍시를
따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몇 날 며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은 당장 따먹어버리자고 했고
딸은 절대로 안 된다 했다


이웃집 감나무 주인도
越境한 감나무 가지 하나 때문에
꽤나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우리 식구들이 홍시를
따먹었는지, 그냥 두었는지
여러 차례 담 넘어로 눈길을 던지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감나무 가지에서
홍시가 떨어질가 싶어 마음을 졸였다 한다
밤중에 변소에 가다가도
감나무 가지에 불이 켜져 있나, 없나
먼저 살핀다고 한다


아,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감나무 때문인가
홍시 때문인가
울타리 때문인가


(안도현 시집/ 바닷가 우체국, P46,
"연을 날리는 일과 시를 쓰는 일과 그리고 살아가는 일이 결국은 따로 있지 않으므로
매사에 지극 정성을 다하는 도리 밖에 없겠다. 다만 연을 날리다 보면 연줄을 뚝 끊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연을 날려 보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시의 언어가 문득 나를
떠나가려 한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 하겠다. (언어의 게임)
1999년 1월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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