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등켜 안은 뜨거운 가슴...
황덕혜
2008.04.22
조회 61
이 쑥스럽고 고마운 마음, 표현 할 길 없습니다...
한갓 애청자인 저의 생일에 이렇게나 많은 분들의 댓글, 정성이 느껴지는 글귀들...
언젠가 여건이 된다면 꼭 한번 뵙고 싶은 마음이 드는 따뜻한 이름들...

이젠 어디로 도망 갈 수도 없는 끈끈한 정....
그마음 고이 간직 할게요...
고맙습니다~~~~~~~~~~~~~


모두가 궁금해 하실 선영 언니와의 여행길, 저와 함께 떠나 보실래요?

3시간 30분이 소요 되는 안동 가는길...
때맞춰 선물로 받은 cd를 한장 한장 들으며 오랫동안 방치되어 묵은 먼지 소복하게 쌓인 그시절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들춰 햇살 속에 펼쳐냈다

언니와 나는 닮은꼴이 너무 많았다
우선 생일이 똑같은 날 이다
한해 먼저 4월 21일 태어난 언니...
안그래도 깔깔 대며 웃기 좋아 하던 나이...얼마나 신기해 하며 부등켜 안고 웃었던가...
그 시절의 봄, 모두 우리것 인줄만 알았다

또 대학 신문 기자 생활을 2년 동안 함께 했다
'문화부'를 맡아 원고 청탁도 늘 같이 하러 다녔고 아이디어 회의를 해보면 '언제 내 머릿속 생각 훔쳐 갔어?' 라는 말이 동시에 나올 정도로 느끼는 감성이 비슷했다

맘이 어지럽거나 강의가 빌 때, 교내 '클라식 음악 감상실' 로 줄행랑을 쳤다

오죽 하면 우리 둘 잡아 오려면 '음악 감상실' 과 '청운 다방' 두곳만 훑으면 모두 해결 된다는 말이 나 돌았을까?

음악 좋아 하고 여행 좋아 하고 책 읽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 였다

언니의 끊임 없이 이어지는 얘길 묵묵히 들어 주며 "그랬어?" "아~~그랬겠네" "그랬구나" "그래, 맞아~~" 라는 추임새만 간간이 곁들였다

어찌 됐던 털어 낼 것은 속 시원히 털어야 할 것 아닌가?

선배 한식집에 당도 한것은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서 였다
계속 바깥쪽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던듯 차 멈추는 소리가 나자말자 선배가 두팔 벌리며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선영아~~이놈의 가시나...어서 오너라.. 죽을 고생 했제? 미안타 증말 미안테이~~"
덥썩 품에 안으며 선배는 기어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빠....살아 있으니 보네요...그쵸? 세월이 그동안 덧없이 흘러 갔네요....그사람 없이 저 혼자 이렇게 와서 참 면목 없네요..."
"괜찮다.. 어디 그게 니 잘못이가? 성질 급한 그 놈 탓이지.. 이리 연약한 니를, 매정도 하지. 어찌 그리 서둘러 지 혼자 갔단 말이고?"

아들 형제만 셋에 맏이 였던 그 선배는 우리에게 '오빠' 라는 호칭을 강요 했고 안동이 고향 이었던 선배는 우리가 "오빠, 오빠" 라고 불러 주면 좋아라 하며 없는돈 탈탈 털어 한끼 식사는 너끈히 해결해 주곤 했었다

안내를 받아 식당으로 들어서니 이미 그곳엔 연락 받고 기다리고 있던 선후배 20 여명이 두줄로 나란히 서서 언니를 향해 뜨거운 박수로맞이 하고 있었다

악수와 포옹...그리고 짤막한 덕담들..
그중 친분이 돈독 했던 사이들은 다시금 부등켜 안고 눈물들을 쏟아냈다

정갈 하게 차려진 음식들..
그날 선배는 손님을 받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술이 몇순배 돌자 선배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선영아~~니는 그래도 세월이 비켜 갔는지 조금도 안 변한것 같다 이제 부터 니 관리 해야 쓰겠네~~껄떡 대는 놈 있으면 재깍 연락 해라 알겠제? 안그래도 몸이 근질 거렸는데 간만에 몸 좀 풀어 보게"
하면서 두툼한 손바닥을 탁탁 쳐대며 흰소릴 늘어 놓더니...

"선영아~~그때 니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여기 모인 놈들 말고도 너거 부부 한테 마음의 빚 안진 사람 없을끼다 그래도 니가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 줘서 얼마나 감사 한지 니 아나? 그놈이, 그 매정한 놈...우리에겐 해결사 였는데...니 신랑 한테 한 두 번 신세 안진놈 여기 아무도 없을낀데...우리가 마음이 없었던것도, 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땐 어찌 그리 빈손, 오그라든 손 밖에 없었는지 ....지금 정도라면 그놈 외국 이라도 싣고 가서 최선을 다해 봤을낀데..."

갑자기 언니가 울음을 토해낸다
"맞지? 오빠... 지금 이라면 저도 그사람 살릴수 있어요...돈 있음 뭐해요? 사람이 없는데...그래도 여기선 저를 사람 대접 해 주네요"

깊은 속앓이 했을 20년 된 상처를 기어이 쏟아 놓는다

"그사람 그리 되고 3년에 걸쳐 친정엄마 친정 아버지 시어머님이 차례로 세상을 떴어요 그리고 여동생 결혼 날을 받았는데 큰 오빠가 절 조용히 자기집으로 부르더라구요 그러더니 '넌 어찌해 볼 수없이 불행을 몰고 다니는것 같다. 니 인생은 망신창이가 됐지만 동생은 보호 해 줘야 안되겠나~~~~~그러니 니 딸레미랑 걔가 자리 잡을 때 까지 모습 보이지 말고 어디 조용히 숨어 지내면 안되겠냐?' 그랬어요~~ '투명 인간', 짙은 그늘 속 '그림자' 같은 존재로 모녀가 살라는 거였어요"

예상은 했었지만...
'핏줄' 이라는 끈을 달고 우리는 얼마큼 이나 많은 상처를 서로에게 주고 받는 것일까?

빨개진 두눈으로 나를 찾던 언니..

"덕혜야~~그날 나 떠난다고 전화 한 날, 그 다음날이 동생 결혼날 이었어. 오빠가 나에게 했던 얘길 글쎄, 딸이 다 들어 버렸네...아무 의욕도 힘도 없이 터덜 터덜 걸어 오는데 딸이 이러는거야~~ .엄마, 우리 먼나라로 떠나자 응? 내가 엄마께 힘이 되어 줄께' 그 어린것이 글쎄 손에 힘을 꽉 실어 주는데 정신이 번쩍 나더라. 무작정 떠났던 곳이 중국 이었어. 죽어도 그곳서 죽자. 거렁뱅이로 살아도 그 나라서 빌어 먹자. 그랬어 근데 아까 오빠가 나한테 그러더라 '그게 어디 니 탓이가?' 그말, 정말 정말 듣고 싶었어요 오빠, 다시 한번 날 안아 주며 그 말 한번만 더 해 주세요"

선배는 북받혀 더이상 어찌 할 수 없는 가슴으로 선영 언니를 뜨겁게 안아줬고 언니는 이제야 먼길 돌아 쉴곳을 찾은 한마리 새처럼 고단했을 날개짓을 잠시 접는듯 보였다

우리의 눈물도 절정을 치달았다

안동 외곽지에 위치한 선배의 식당
우리 모두는 마당으로 자릴 옮겼고 바베큐로 한마리 중돼지를 잡았으며 청해논 벤드에 맞쳐 어디에서도 부를수 없던 우리들의 노래를 가슴 열어 놓고 목놓아 불렀다

선영언니...
겅중하게 큰 키에, 살집없는 어깨, 핏기 없는 얼굴에 애잔함이 묻어 나는 고운 목소리...

첫곡으로 부른 노래는 이 노래였다
' 첫 사랑에 당신은 울었나요~~가슴만 설레이던 지난날 그 사랑을...'

모두 손뼉 치며 부르다 나중에는 젓가락 장단으로 까지 번졌던 그 노래...

그렇게 우리들의 화려한 봄밤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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