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해서 따 둔 자격증을 대구의 모처에 걸어두고 한달에 몇번 걸음해서 꼼꼼히 서류 정리해주고 그에 상응 하는 금액을 다달이 받는다
그런대로 재미가 쏠쏠하다
24일 사장님과 미팅 약속을 하고 23일 저녁 기차로 대구를 찾았다
유가속 식구들이 모두 들떠 있던 24일 새벽, 부산 사는 질녀로 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이모~~나, 현희...이모~~ 어떻게해? 좀 와줄수 없어?...우리 아버님이..."
와들와들 떨어대는 목소리.
맑은 정신이 화악돈다
"유서방 옆에 있니? 왜? 어른이 왜?"
"아~~이모님, 유서방입니더. 새벽에 아버님이 심장마비로 돌아 가셨심더...근데 이사람이 아무리 말려도 이모님을 찾으며 벌벌 떨고 있네예. 이른 시각에 죄송 합니더 많이 놀라셨지예?"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학교 다녀 오니 애기가 강보에 싸여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옆에서 언니는 계속 울고 있고...
딸만 셋이 됐다며..
자연히 눈총 받는 자리에 태어난 현희.
내방에서 함께 컸다
이질간이기 보다 나이 차 많은 자매처럼 살았다
언니 식구가 서울로 떠난 몇년뒤 나도 학교 때문에 서울로 왔다
어쩌다 언니집에 하루 묵을라 치면 현희는 아무도 내옆에 못오게 했다
둘이서만 꼭 껴안고 잤다
고민거리가 생기면 언니 보다 나부터 찾는다
그만큼 우리둘의 정은 각별하다
순간 친정 아버지 돌아 가셨을때가 떠올랐다
묵주에 감긴 아버지 손...
보랏빛의 손톱을 바라본 순간 나는 땅바닥에 맥없이 주저 앉았다
남편이 부축하며 했던말이 귀에 윙~~~~하고 곁돌았다
"여보야, 정신 차려라...이사람이 와이래 떨어쌓노?"
"유서방, 따뜻한물 좀 먹이고...유실이 좀 바꿔봐요... 현희야, 내가 준비해서 빨리갈게 정신 차리고 기다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남편은 나보다 더 빨리 준비 끝내고 차 시동을 걸어 동행해줬다
핏기 하나 없이 있더니 나를 보자 화색이 돈다
시어머님 먼저 보내고 14년을 혼자 사시다 정말 자는잠에 돌아가셨다
한탯줄을 타고나도 인생의 몫은 각각인듯 언니와 나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다
처음부터 시어른 안계신곳으로 시집가서 국민학교 교사생활 25년...
1남 3녀 울엄마가 다 키워주고...
그래도 자기 고생은 하늘만이 안다나 어쩐다나...
언니 고생담이 소설 몇권 짜리면 나는 대하 소설감이네요~~~~~~~
사실 언니가 온들 아무 소용도 없는 입장...
일머리 틀어주고 시장 봐주고 손님 수십차례 시중들고 집에 가서 아이들 먹을것 챙겨주고...
일요일 저녁 대구로 돌아와 입맛도 없는 저녁 지어 남편과 한술 뜨고 더운 물에 샤워 하고 자리에 누울 즈음 '주 경'님 전화가 왔다
"아줌마~~~~~~~뭐야~~~~~~~토욜 내 전화도 씹구...어디야? 대구? 아이구 좋겠다~~~~~~~뭐야~~저번에도 남편 만나지 않았어? 아이구~~잘났어 증말~~나, 내일부터 일주일간 러시아와 중국 여행 간다고 보고차 전화했지... 나 없는 동안 유가속 잘지켜~~~알았지?"
통. 통. 통.
목소리가 튄다
토욜에 가기로 했던 회사, 오늘 낮에 처리 다하고 파김치 처럼 늘어져 집에 돌아오니 '유가속'이 그리워 목과 입안이 바싹 말라오는 갈증이 목을 죄어왔다
마침 '유가속'이 진행 되어지는 시간이다
제일 먼저 라디오 부터 켰다
'사랑한다 더 사랑한다'가 흐른다
음악이 귀에 꽂히자 온몸에 그나마 남아 있던 기력이 손끝으로 빠져 나가는듯 몸이 어디에나 무너지듯 주저 앉고 싶어졌다
그래도 커피 한잔 끓여 한모금 목넘김 하면서 영재님 멘트 하는 목소릴 들으니 며칠동안의 일이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 온것 같은 안도감과 함께 비로소 기분좋은 나른함이 전신을 감고 흐른다
"당신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쓰이는 물건이니 우짜겠노? 고달퍼도..."
위로한답시고 남편이 내게 건넨 말이다
에효~~~~~~~~내팔자.
누구 탓으로 돌리겠노? 그쟈?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