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영재님께서 '고요한 밤' 업그레이드된 것 소개하실 때 한참이나 웃었는데, 이렇게 저도 참여하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번개 테마1]
사회의 어두운 밤
교묘한 밤1000원, 거북한 밤2000원,검은 돈 오간 밤30000원
[번개 테마2]
'소금'이라 불리우던 가게 아저씨
우리 가족이 부산에서 살다가 1971년 11월에 서대문구 수색동으로 올라와서 잠시 전세집에서 살다가 시골 논을 팔아서 1972년 6월에 동대문구 이문동에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집 한채를 장만했습니다.
우리집 골목에서 나가면 양쪽에 가게가 있었는데, 조금 큰 가게의 주인장 아저씨는 공포감이 들 정도로 무서운 인상의 소유자라 우리 가족은 그 가게는 자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왼쪽에 있는 가게는 비록 허름하긴 해도 더 가깝고 주인장 부부의 인상도 흉악하진 않아서 그 가게를 많이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상회 때 이웃 주민들 말로 워낙 쥔장 아저씨가 짠 분이라 별명이 '소금'이라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물건부터 허술한 걸 갖다놓기에 엷은 갈색껍질의 달걀은 없고,잘 부서지는 백색껍질의 달걀만 두었다가 받는 과정에서 계란이 부서져도 꼭 손님에게 가격을 요구하고, 번개탄등을 아무리 많이 사도 덤을 하나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분으로 동네 사람들 평판에 걸맞게 사는 아저씨였어요.
그렇게 작은 욕심을 부리며 사는 아저씨가 워낙 말라서 흡사 북어포 말린 것마냥 여위었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연세가 많지 않은 분임에도 눈가의 주름이 너무 많아서 거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인상이었지요.
가끔 달걀 심부름을 갔다가 부서져서 돈만 치르고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하면 어머니가 달려가서 항의하고 그러면 아저씨가 마지못해 한두 알 내놓기도 하는 등 옥신각신해도 그 가게를 이용하며 우리 가족이 서울생활에 익숙해질 즈음에 '소금'아저씨는 가게와 가게 뒤에 붙어있는 살림집을 팔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떠난 뒤에 그 쥔장 부부의 이야기는 재미있더군요.
워낙 가게가 허름하고 집도 그 모양이니 얼른 팔리지 않아서 나름대로 골머리를 앓았던가 봐요.
그래 참다 못한 쥔장 아저씨가 부인을 시켜서 부적을 장만하여 집안 벽마다 붙이고,집안 벽 한 귀퉁이에 칼을 꽂아두었다는 걸 다음 가게 주인이 이사오자 옆집 아줌마가 알려주더랍니다.
사실 제 어릴 때 친척 한 분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거던요. 시골에 살다가 남편이 부산으로 취직이 되어서 집을 정리하려는데, 안팔려서 지붕 꼭대기에 칼을 꽂아두었다는....
아마도 시골집은 초가지붕이라 지붕에 칼을 꽂고, 도시 기와집은 지붕에 꽂을 수 없어서 벽에다 칼을 꽂은 듯....
옛날 분들은 이와 같은 일을 곧잘 하지요.
지붕에 칼 꽂은 아줌마의 언니는 결혼한지 10년이 되어도 아기를 갖지 못하자, 친정어머니가 자손이 많은 집의 장단지(간장이 든 조그만 오지 항아리)를 훔쳐와서 그 항아리를 뜨거운 솥에 푹푹 삶아서 그 물을 마시고 아이를 가졌다니 지금의 우리로서는 참으로 못믿을 이야기.
하여간 그렇게 안팔리던 그 가게와 살림집을 산 부부는 마산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온 부부인데, 여기저기 다니다 하도 다리가 아파서 그 남편이 뒤도 안돌아보고 그냥 샀다고 합니다.
부인이 살아갈수록 화가 나서 우리 어머니가 가게에 가시면 전해준 바로는 '소금'아저씨답게 집이 철저히 망가지도록 사용하고 손 하나 대지 않고 달아나서, 마산 출신 부부는 살림집 굴뚝과 아궁이를 자그마치 아홉개나 고쳤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러한 가게 쥔장을 만나보려야 볼 수도 없는 세월인데, 어디 가서 벽에 칼 꽂아놓은 아저씨를 뵐 수 있을까요?
'유가속' 덕분에 재미있는 괴짜 쥔장 '소금'아저씨를 회상하며 어머니와 함께 함박웃음꽃을 피웠답니다. 감사합니다.
[번개]밤 한 봉지 값과 괴짜 쥔장 이야기
정현숙
2008.06.30
조회 39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