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황덕혜
2008.07.22
조회 85
남편이 정해준 시각에 ktx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서울을 떠날 즈음 꾸물거리던 하늘이 기어이 긴 울음을 토해냈다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 뜨거운 열기의 동대구역사에 남편이 환하게 웃으며 마중 나와 있었다

조수석 차 문을 열어 주는 센스.

함께 여행한 4박 5일 동안 내가 여태껏 들어 보지 못한 많은 말들을 남편은 쏟아냈다

직장 출근 일정 때문에 우리는 신혼 여행을 제주도에서 경주로 바꿨었다

보문 단지가 훤히 내려다 보이던 그 호탤, 그 방을 남편은 미리 예약해 놓고 있었다

남편의 구구절절한 얘기를 요약해 보면.....

"당신 한테 나는 참 비겁한 놈 이었다

내가 봐도 해결 방안이 안나오는 수많은 일들... 당신은 한마디 군담 없이 그 짐 혼자 다 지고 묵묵히 견뎌 내며 해결해 나갔다

어떻게 그 앙금과 상처의 흔적을 지우고 잊으라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오늘 밤 이 후로 다시 시작 하고 싶어 이곳을 택했다.

미안하다, 정말 당신께 미안했다

당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이겨 주겠지 했다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도 거뜬히 넘겨준 사람이 그깟 우울증 하나 못 이겨 낼까.. 저 나이의 여자들이 으례껏 앓는 감기 정도의 병...

내가 참 무지 했고 비겁했다
병증이 깊어지면서 밤에 홀로 울고 있는 당신 뒷 모습 몇차례 목격 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여태껏 저사람에게 무슨짓을 했었나....

환경을 바꿔 주기 위해 아이들과 당신을 서울로 올려 보내고 나서야 그동안 얼마나 편안한 삶을 누리고 살았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당신과 함께 커풀티를 입고 싶더라
그런 옷은 젊은 사람의 몫만은 아니지 않나 생각했지

그런데.... 허허 그런데....
당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게 하나도 없더라

싸이즈가 얼만지, 무슨색을 좋아 하는지, 어떤 책과 음악을 즐겨 하는지, 요즘 고민은 뭔지, 당신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어떤 분야였는지...

참 허탈하고 무기력해 지면서 내가 이런 놈 이었나....자책했다

예진이가 그러더라....울먹이면서....
'아빠가 엄마에 관해 알고 있는게 뭐냐? 동갑이니 나이는 알고 있겠네요'

뼈 아프게 들리더라

늘 늦은 시간 퇴근해, 집에 올 때 마다 당신이 떠나 버렸음 어쩌나.. 이 사람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서 내곁에 데려오나..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도 행동으론 어떤것도 시도하지 못한 비겁자 였었다


그런 나를 올해 초, 결혼 25년 기념 터키 여행에 초대해 줘서 참 고마웠고, 돌아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을 계획 했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제 2의 신혼을 살아 보자
다시한번 기회를 준다면 나도 노력 하고 살게. 당신 말대로 가슴에 불같은 정열이 있음 뭐하노....표현 하지 않았는데...


입이 열개라도 할 말 없지만, 장인 장모님과 우리 애들 어린 시절의 시간들에 제일 면목 없다

당신에겐...이러더니 갑자기 짐승 울음 같은 울음을 토해내며 이렇게 절규했다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야속하고, 야속하고, 또 야속 했던 사람...

한 달 지나면 바꾸겠지, 일 년 넘어 서면 사태 파악 하겠지, 이제 홀 아버지 남아 계시니 느껴 지는게 있겠지...

쓰러질것 같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할 때, 멀리서 집 그림자만 보이면 눈 질끈 감고 친정으로 되돌아 가고 싶던 시간들...

스스로의 감정 조절이 안될것 같아 모든 사람의 비난 속에 양쪽 발에 족쇄를 채우고자 둘째 아이를 가졌다

나를 아꼈던 모든 사람들이 수근댔다
'드디어 쟤가 미쳐 가나보다 저 환경에 둘째 아이라니...'

온 집에 지린내가 등천을 했고, 병든 노인네 두 분과 어리고 어린 내 새끼들이 내 모습이 보이면 모두가 안도 하는 분위기였다

그냥 훌훌 털어 버리고 도망 가고 싶었고, 눈이 떠진 그 아침들이 죽기 보다 싫었던 시절...

그는 늘 바람결 이었다
분명 그의 존재는 있었으나 붙잡아 둘 수 없었던 바람의 존재...


그랬던 그가 다 잊으란다
못다 베풀었던 자신의 사랑 받을 준비 하고 다시 시작 하자고 한다


물기 한점 없이 바스러지게 말라버린 가슴에선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으면서 담담했다

그렇게 그 밤은 호텔 빠에서 묵묵히 술잔을 기우리며 그의 얘기를 듣고 또 들으며 깊어갔다


(신청곡) 박강수ㅡ 원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