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손
황덕혜
2008.08.08
조회 44
올해는 그립던 사람들이 나를 찾아 주는 행운의 해 인가보다

어제 아침, 여느날 처럼 폰이 울었다
낯 선 번호....

"저...황덕혜....씨.... 폰 맞나요~~~~~???"
엄청 자신 없고, 그러나 격양된 목소리.

"너~~~~유경이? 송유경 맞제?"
"문디 가시나~~살아는 있었네~~~"

여고시절, 단짝 친구중 한명 이었던 송유경.
엄청 공부도 잘했고 지독한 노력파였다

완고 하고 고지식 했던 유경이 아버지는 맏딸을 서울은 고사하고 남녀가 섞여 있는 경북대학교에 원서도 못쓰게 했다

결국 효성 여자 대학에 장학생으로 선발 되어 대학 생활을 시작 했지만 유경이 가슴속 활활 타오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한으로 남더라고 했다

그러나 대학 3학년 여름 무렵, 아버지가 쓰러져 돌아 가셨고 천상 여자였던 어머니와 동생 셋이 유경이 곁에 덩그렇게 남겨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무도 그애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차 엄청 많이 나는 남자와 결혼 했고 그 댓가로 동생들이 모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는 확인 할 수 없는 소문들만 바람결에 쓸려 다녔다

약속 장소에 미리 나와 있던 유경이.
나도 팍삭 늙어 버렸지만 내 눈을 의심했다

"너무 늙었지? 그래도 넌 옛모습 좀 있다"
북한산 주변 식당에서 '팥 칼국수' 먹고 경희대 부근 한식집에서 '제육볶음'으로 저녁을 먹으면서도 가족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비추지 않았다

그래~~~지금의 니 사정이 뭐 필요하냐? 우린 옛친구인데...
갈래 머리 쫑쫑 땋아 묶고 재잘재잘 깔깔깔...꿈 많던 소녀적 친구인데...

"나, 너 엄청 부러워 했다...아니, 얄밉기까지 했어."
"엥? 왜?"

"가시나,나는 간이 떨려 한번 시도 해 볼 엄두도 못해본 별들의 고향 같은 영화도 쌤들 눈 피해 다 보고 다니고,
소설책도 엄청 읽고...그것도 흥미 없는 과목 수업 시간에....연애 편지 대필은 도맡아 써주고...
할짓 다하고 놀것 다 놀은 너나 코피 쏟아가며 공부한 나나 성적은 별반 차이가 없었잖아...
참 약 올랐고, 너네집 분위기는 엄청 부러웠다

영감쟁이, 그리 짧게 살다 떠날거였음 의대라도 보내줬던가, 너처럼 서울 생활 맛이라도 보여 줬으면...내 삶의 색깔이 지금보단 고왔을텐데..."


손을 잡으니 손바닥이 나무껍질 같다
그 고단했을 삶...손바닥이 많은 이야기를 전해줬다

결혼한 뒤 바로 남편따라 케나다로 건너갔다는 말 외엔 헤어질 때 까지 남편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했다

아이는 아들 둘 딸 하나 셋인데 모두 결혼 시켰다 면서
"10 년 전 한국 와서 널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 니 그림자도 못 봤다면서 어쩌면 늘 몸이 약했으니 죽었을지도 모른다 더라"

"이렇게 널 만날 줄 알았으면 비행기 표 한참뒤에 끊을걸. 항공사 알아 봤더니 티켓이 없단다 돈 없다는 말도 모두 빈 말인가봐. 들어 가 봐야 어차피 혼자 삶인데..."

웅얼웅얼 혼자말 처럼 흘리는 한마디에 지금의 삶이 그림처럼 펼쳐져 보였다

마지막으로 친정집 전화 번호로 연락 취해 봤더니 셋째 오빠가 내 번호를 알려 주더라고 했다

"엄마 모시고 들어 가려고 두번째 나왔는데 노인네 고집이 왠만 해야지~~양심은 있는지 니 청춘 담보 잡혀 우리가 이렇게라도 사는데 죽어도 아들집서 죽지 만리타국 딸한테 얺혀 살다 죽고 싶진 않다 그러시네~~ 핏줄 덕은 눈꼽 만큼도 없나봐."

선영 언니가 떠오른다.

두번이나 나를 찾았으니 한번쯤은 나보고 건너 오라면서 '서울 아이들 주소' '대구 아이들 주소' 적힌 종이 두장을 내민다

"우리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니? 그래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하고 교류는 하고 살자"
숙제를 주고 떠났다

우리 나이대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 하는것 같다
그래도 세파를 헤치고 뭍으로 기어 올라온 사람과 아예 깊이 잠수 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늦은 시각까지 피곤에 절어 공부 하고 돌아 온 딸애를 맞이하며 맘이 착찹하다

삶이 이렇게 깊은 소용돌이 속 임을 어찌 짐작이나 할것이며, 대학 공부까지 다 마쳐도 세상의 열린 문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세가지 네가지 재주가 있어야 밥 벌이 할 수 있다는 아이들의 미래에 비한다면 차라리 운명에 순종 하고 살아낸 우리가 더 행복한 시절이었을까?

허공을 휘저으며 바람을 움켜 쥐는 허망함 일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뭔가 흔적을 남기는 부단한 몸짓을 해야함이 아닐까?

그것이 비록 늘 텅 빈 바람 손 일지라도....

나는 조만간 먼 길 떠날 채비를 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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