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 위로 솟은 비행기는
어느 덧 구름위에서 수평을 그리며 편안하게 비행하고 있었다.
지상에서 그렇게 퍼붓던 빗줄기를 찾아 볼 수 없었고
비행기 몸체도 언제 젖었을까 싶게 빨리 말라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구름과 새까만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맑은 날의 밤바다를 보는 듯.
저 멀리 수평선이 까만 하늘과 맞닿아 있고
그 위로 별들이 쏟아질듯 한 그런 밤바다 같았다.
잠시 후,
비행기 안의 모니터에서는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항로가 안내 되었다.
벌써 서해안을 지나 중국의 천진, 그리고 베이징에
가까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혹시 베이징이 보이지 않을까 창밖을 내다보았다.
중국 상공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였다.
저 멀리 희미하게 주황색의 빛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빛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바로 베이징이었다.
비행기는 고도를 다소 낮추고
베이징 시내를 한 눈에 보이게 하였다.
이윽고 들려오는 기장의 목소리...
“2008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는 베이징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베이징을 보게 되다니...
그것도 올림픽이 열리는 곳을.
지금 저 곳에 우리 선수들이 있겠지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눈에 베이징 시내를 볼 수 있었다는 감격을 뒤로하고,
우리는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 상공으로 향하고 있었다.
몽골의 넓은 초원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간혹 아주 조그만 모래 알갱이 같은 불빛만
어렵게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까 중국의 도시를 본 것과 같은 큰 기대는
이르쿠츠크에 다 이르도록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별빛은
쏟아져 내릴 것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우리의 길을 비추어주기라도 하듯
커다랗고 둥그런 보름달은 환히 빛나며 자꾸만 따라오고 있었다.
자정 무렵.
어느덧 비행기는 고도를 점점 낮추고 있었다.
우리의 도착지인 이르쿠츠크에 가까워졌나 보다.
비행기는 이제 이르쿠츠크 도시와 아주 가깝게 날고 있었다.
시간이 늦은 것일까?
구불구불 길게 나 있는 도로에
차들이 하나씩 둘씩 드문드문 보였고,
건물들은 불이 많이 꺼져 있어
조금은 삼엄하게 보여 졌다.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거리의 가로등과 주택가의 등,
그리고 집집마다의 불빛.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이르쿠츠크의 야경이었다.
비행기가 이제 이르쿠츠크 아니 러시아 땅에 막 닿으려고 했다.
두 손을 꼭 잡은 나와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보며
비행기가 속도를 늦추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멈춰선 비행기 안.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얘기 소리로 술렁거렸다.
아마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미지의 타국에 왔다는 호기심일 것이다.
울퉁불퉁 활주로를 한참을 돌아 멈춘 이 곳.
창밖 가까이에 공항청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왔어요. 어머니!”
“그래, 그렇구나!”
“와~떨려요”
쿵쿵거리는 떨림으로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이르쿠츠크 공항은 우리나라의 중소도시에 있는
기차역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입국장은 2개의 심사대로 나뉘어져 있어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 140명이 한꺼번에 입국심사를 받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아 보였다.
역시 2시간이 넘는 지루한 입국 심사가 이루어졌다.
새벽 2시 30분 입국장을 나온 우리들을
캄캄한 공항 광장에서 현지 한국인 가이드와 러시아인 가이드가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러시아인 가이드가 정말 반가웠다.
오랜 시간 입국 절차로 피곤에 지친 우리를 싣고
버스는 호텔로 향했다.
거리는 어둡고 다소 차갑게 느껴졌다.
하나 둘 지나가는 차의 불빛만 있을 뿐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거리 풍경이었다.
드문드문 세워진 커다란 러시아어의 광고판이 어둠을 밝혀줄 뿐이었다.
도심에서 벗어난 한적한 주택가의 호텔에 도착하였다.
별4개의 호텔이긴 하지만 그 규모는 그리 크고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르쿠츠크에서는 꽤 좋은 호텔이라고 한다.
우리가 묵을 방은 5층의 맨 끝 쪽의 방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멀리 떨어져 좀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위안으로 방문을 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아담한 테이블과 의자,
깨끗한 욕실이 마음에 들었다.
창문을 여니 이르쿠츠크의 맑은 새벽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조금은 서늘한 기운의 바람이었다.
한국의 지금은 열대야로 잠 못 이루고 있을 텐데.
여기의 지금은 가을밤처럼 고요하고 신선하였다.
새벽3시30분.
내일 일정이 바쁘다고 하는 데 잠이 통 오질 않았다.
때를 놓쳐서 인가보다.
어머니도 못 주무시겠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팩소주를 꺼내어
한 잔 먹으면 잠이 올까 한잔씩 나누어 마셨다.
금방 취기가 돌던가 싶더니 눈꺼풀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물렁물렁한 베개, 그리고 매트리스 위에서
낯선 이르쿠츠크의 새벽을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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