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냄새가 그리워
정현숙
2008.11.20
조회 42
얼마전 동치미무우로 깍두기를 담그면서 나온 무청을 남편이 야무진 손끝으로 엮어 베란다 한 켠에 걸어두었더니

파랗게 아주 잘 마른 시래기가 되었다,
푹 삶아 멸치넣고 된장 풀어 날콩가루 주물주물 묻혀 된장국을 끓여볼 심산으로 아침 일찍 가스불 위에 얹어 두었더니...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냄새를 한껏 풍기며 끓기 시작했다.
`쇠죽 끓이는 냄새'라고 내가 늘 부르는게 귀에 익은 탓인지,
금방 잠에서 깬 그이가 "어이구,그 쇠죽 끓이는 냄새 한번 구수하다"하며 주방쪽으로 와본다.
그리곤 냄비 속 한번 들여다보고 내 눈 한번 맞춰보곤... 빙그레 웃는다. 그렇게 좋나~하는 눈빛이다...

쇠죽 끓이는 냄새...
어릴적 겨울방학을 난 늘 경북 의성의 외가에서 보내곤 했다.
동네 앞자락에 낙동강이 흐르는 풍광 좋은 시골마을에 외가가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칼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소외양간이 바로곁에 있는 아래채에서 기거를 하셨는데 잠자리에 들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가운데자리를 차지하려고 외사촌 동생과 신경전을 벌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두 노인들이 사용하시던 방은 그 시절, 흔한 풍경이겠지만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을 데우는 전형적인 그런 구조였다.
그 아궁이 위에는 커다란 무쇠 가마솥이 걸려 있었는데 새벽녘, 옆이 허전해 깨어보면 팔배개해주시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간 곳없고

영락없이 코 끝에 와 닿던 그 냄새...
졸린 눈을 부비며 옷을 입고 문을 열고 나가보면 외할아버지께선
구정물에다 잘게 썬 짚을 넣어 잔솔가지를 태워 쇠죽을 끓이시고 계셨다.

난 그 냄새를 너무 좋아했다.
가까이에서 코를 킁킁거리며 `아~좋다~'를 연발하면
외할아버진 "우리 현숙이는 쇠죽냄시가 그레 존나?"하시며

머리를 어루만져 주시곤 하셨다.
가마솥 안에서 김이 풀풀 나는 그 구수한 쇠죽을 한 번 맛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

불이 사그라지면 재 속에다 묻어서 구워 주시던 그 군고구마 맛은 또 어땠던가...
외양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소가 맛나게 쇠죽 먹는 모습을 침을 꼴깍대며 지켜보고 있노라면
"쇠죽솥 안에 물 따시게 뎁하나따 씻거레이~"
외할아버지의 정겨운 음성이 귓가에 날아오곤 했다.

날이 선 작두에 볏짚을 썰어 쇠죽거리를 장만하실 때,
외양간에 있던 소를 햇볕 따사로운 양지께로 옮겨 두시고 젖은 짚을 쇠스랑으로 끌어내고 마른 짚을 깔아 새 자리를 마련해 주실 때,
그 때는 그런 모든 일들이 왜 그리도 신나고 좋아 보이기만 하던지...
"외할부지 나도 한번만 해볼래요..."
귀찮도록 졸졸 따라 다니며 온갖 참견(?)을 다 해대는 나를 보고 외할아버지께서
"허허허 이노무 가스나, 이담에 천상 촌으로 시집 보내야 할끼구마"하시면 외할머니께선 질겁을 하시며
"영감 그런 소리 마소, 우리 현숙이는 나중에 설(서울)로 갈낍니더, 야야~알았제!"하고 다짐을 하시곤 하셨다.
그런 외할머니의 예언(?)대로 결국 그 `조막디만하던 현숙'인 이렇게 서울로 시집을 왔다. 스무해도 더 전에...



결혼 후, 남편과 이런저런 옛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게 되면서
어릴적 나의 외갓집에서의 추억담들을 들려줄 기회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남편 역시 그 쇠죽 끓이는 냄새를 무지 좋아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형,누나들을 젖히고 자청해서 그 일을 즐겨 했을 정도로...
"히야~ 천생연분이다~ 촌에서 자라지도 않았는데 우째 그 냄새를 다 아노~"
남편은 어쩌면 별것도 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명난 듯,
이미 나 역시도 너무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그 전과정(쇠죽거리를 장만하는 일부터 끓이는 일까지)을 열심히 설명하기도 했었다.

시래기 삶는 냄새가 어찌 그 냄새만 하랴만은...
난 그래도 부득부득 비슷하다고 억지 아닌 억지를 부리고 싶다.
시래기를 삶는 날만큼이라도, 오래된 기억 저 편의
상투머리, 쪽진 머리를 고수하고 사셨던 그리운 나의 외할아버지,외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고

외갓집에서의 여러 정겨운 기억들을 하나 둘 아련히 떠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남편 표현처럼 `추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유년시절'이 내게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던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내 가슴은
표현못할 따뜻하고 뭉클한 그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눈물이 글썽거려질 만큼......



신청곡...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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