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6월 29일 오후.
서울에 출장중인 나는 컴퓨터음악학원을 하는 후배와 전화로 미팅약속을 잡는 중이다.
“몇시가 좋겠어??”
“네......저녁 6시에 뵈었으면 합니다.”
“6시는 늦어서 곤란하다. 오늘 내가 낚시를 가야 되거든.......”
낚시가는 걸 핑계로 내세웠지만, 사실 해가 지고 헤드라이트를 켤 때쯤이면 차앞유리와 헤드라이트에 하루살이가 달려들어, 긁어내려면 고생스러워 겸사해서 후배와의 약속시간을 앞당기자고 한 것이다.
하루살이 핑계를 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내일 갈 낚시를 하루 앞 당기는 수밖에.....
“선배님 낚시를 가셔야 한다면 할 수 없지요. 그럼 4시에 삼풍백화점 1층 커피숍에서 뵙겠습니다.”
내가 낚시에 빠진 중증환자라는 걸 익히 아는 후배니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해준다.
“그래 이따가 보자구. 고마워 !!"
당시 내가 근무하던 대학에서는‘컴퓨터실용음악학과’를 만들기 위한 가능성 타진을 위해 총장님의 지시를 받고 서울로 3박 4일간의 타당성조사를 갔던 것이다.
3박4일의 출장이지만 조금만 부지런히 다니면 2박 3일이면 충분하니...
목요일에 집으로 와서 금-토는 낚시를 가면 되겠다는 스케줄이 그려지지 않는가?
2박 3일에 끝내기 위하여 이런 저런 조사를 부지런히 마치고, 마지막으로 컴퓨터음악학원을 하는 후배를 만나 이런 저런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약속장소인 서초동으로 이동을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 입구를 지나 우측에 있는 커피숍에 도착하니
후배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다.
들어서니 꽤나 후덥지근 하다.
당시 초여름이지만 내가 더위를 워낙 타는지라 ........
“아줌마 에어컨 안 켭니까? 너무 덥네요.”
“오늘 냉방장치가 고장이 났나 봐요. 오전부터 백화점 모두 이렇네요,
죄송합니다.”
미안하다고는 말하지만 오전부터 더위에 고생한 주인아줌마의
짜증 섞인 대답이 들린다.
“후배야, 나가자. 차라리 에어컨 켜놓고 차속에서 이야기하자. 도저히 못 참겠다....”
“네, 선배님 그러시지요. 아줌마 죄송합니다.”
내 차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이런 저런 업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는
5시가 조금 못 되어 서초동을 출발했다.
더 듣고 싶은 말도 있었지만
조금 지나면 퇴근길 정체가 시작될 테니깐......나머지 내용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올림픽도로를 지나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원주 IC를 지나
치악산고개를 오를 즈음 6시를 알리며, 곧이어 들리는 라디오 시그널 뮤직과 함께
멘트를 한다.
“죄송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제가 오늘은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이 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해바랍니다.“
첫 곡이 끝날 때 즈음.......
다시 멘트를 한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멀쩡한 건물이 무너진단 말입니까? 지금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상태로는 정확한 숫자도 파악하지 못한답니다.
정말 너무하군요. 말세입니다.“
뭐 오래된 멘트고 내 기억력이 정확하진 않겠지만 뭐 대충 이런 멘트였다.
“이궁......뭐가 어떻게 됐길래 건물이 무너지나.....쯔쯔”
조금 뒤에 제 휴대폰이 울린다.
“네. 박병철 입니다.”
“선배님 접니다.”조금 전에 만났던 후배다.
“그래 웬일이야? 아까 업무 통화는 다했는데? 뭐 빠트린 말이라도 남았니?”
“아뇨 선배님 그게 아니고 선배님 취미가 낚시라서 감사드린다고요.”
“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선배님이 낚시가신다고 약속시간을 앞당기셨자나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이나 저나 약속시간은 칼이기 때문에 6시에 약속을 했으면 보나마나 5시 58분에는 분명히 1층 커피숍에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약속은 칼이니깐.....”
“선배님 아직 모르시는군요. 오늘 6시에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그 1층 커피숍도 콘크리트더미에 덮였다고 합니다.”
“.....................헉~”
갑자기 가슴에 뭔지 모를 압박이 밀려든다.
차를 갓길로 세우고 차밖으로 나갔다.
“삼풍백화점이 6시에 무너졌다고?”
아까 라디오DJ가 한말이 그 말이구나.
이젠 가슴이 더욱 콩닥거린다.
“네 형님,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그래 알았다..”
후배랑 더 이상 통화 할 내용도 없다.
아니 가슴이 콩닥거려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차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맡으며
불과 2시간 전 그 장소를 그려봤다.
"삼품백화점"이라고 쓰인 1층 커피숍에서 있었는데......
현실인지 꿈인지.............
내 이마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사랑하는 낚시야 고맙다 고마워~!!!
아니...하루살이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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