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는것을....
와이프
2008.12.10
조회 29
요며칠, 날이 추워 집안에만 가둬두었더니 딸아이는 오금이 저린가 봅니다. 온집안을 들쑤셔 놀이터로 개조해 놓고는 소비한 에너지를 보충할셈인지 툭하면 간식타령을 하네요. 제가 워낙 손맵씨가 둔해 아기자기한 간식거리를 만드는덴 꽝이라 과자따위를 사다주기만 했었는데요. 윗집 아줌마가 놀러왔다가 보고 절더러 계모 아니냐고 놀려대는군요^^* 인스턴트가 얼마나 해로운데 아토피있는 딸애에게 초콜릿이며 유지방 듬뿍 든 과자를 먹이냐고 말입니다. 특히 고구마를 그저 압력솥에 쪄 먹는줄만 알았던 저, 오늘 윗집 아줌마가 알려준대로 냄비에 군고구마를 만들어 봤어요. 집에서 안쓰는 냄비나, 코팅이 굽기전용으로 나온 팬이 있는데 그걸 써요. 일단 고구마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은다음 알미늄 포일로 쌉니다. 냄비역시 물기없이 말끔이 닦아 뚜껑을 덮은 다음 젤 약한 불에 은근히 구워요. 중간에 고구마를 한번 뒤집구요. 정말정말 맛난 군고구마 완성, 절대 냄비가 타지않으니 신기하죠. 저 어릴적 고구마는 겨울철 없어선 안될 식량이었지요.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은 너무도 길어서 하얀 쌀밥만으로 끼니를 때우다간 하루 잘 먹자고 며칠 거르는격이었거든요. ^^* 창고도 없는 집이라 웃방 구석에 아버진 밀짚대로 짠 고구마 둥우리를 만드셨지요. 꼭 어른키만한 둥우리가 만들어지면 식구들이 달려들어 캔 고구마가 빼곡이 채워졌구요. 하루 왼종일 놀다가 지쳐 돌아오면 한귀퉁이 깨진 솥에선 구수한 밥냄새와 함께 고유의 붉은빛이 너무도 선명한 고구마가 흙강아지 같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뿐일까요 어디? 한밤중 저녁 먹은게 다 내려가 출출할 즈음 고구마 몇개 깎아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와 곁들이면 그토록 훌륭한 밤참이 없었지요. 고구마는 요즘처럼 추운날 먹어야 제맛인것 같아요. 당시 대여섯살이던 막내의 팔뚝만한 고드름이 키재기를 하고 있는 처마 아래 마루에 옹기종기 앉아 텃밭 독에서 꺼내온 싱싱한 배추김치 통째로 찢어 고구마랑 곁들여 먹던 기억... 아, 입안에 침이 절로 고입니다. 그땐 질펀한 물고구마가 그렇게도 싫었는데 포실포실한 밤고구마나 달착지근한 호박고구마보다 물고구마 맛이 더 그리워요. 아마 그로인한 추억이 더 많기 때문일까요? 옛맛이 그리워 동치미도 떠놓고, 배추 김치도 통째로 찢어놓지만 제 까다로운 혀는 옛맛을 용케도 기억하네요. 고구마 맛이야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걸, 변한건 제 입맛이겠지요. 달고 편하고 넘쳐나는 먹거리들로 하여 유년의 추억처럼 먼 뒤안길로 물려난 고구마일테지요. 그립습니다. 화롯불처럼 자애로우신 할머니의 넉넉한 품과 세상의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던 아버지의 든든한 어깨와 고구마 둥우리에서 풍겨져 나오던 흙냄새처럼 편안했던 엄마의 사랑, 너나없이 한무리가 되어 잠들던 나의 형제들. 문득 소설가 박완서님이 자신의 고향음식을 떠올리며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것들은(음식들) 식욕을 떠나 정신적인 갈망같은 것이었다고. 추억의 맛을 알아가는 나이, 불혹이 머지 않았나 봅니다. 제 주인보다 먼저 철이 든 입맛을 위해서라도 부끄럽지 않은 나날이어야 겠습니다.

조하문의 눈오는밤 듣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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