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신청합니다.
박미란
2009.04.15
조회 37
내겐 엄마라고 부르면 닳아 없어질거같은 생각만해도 가슴시린 그런 소중학고 존귀한 엄마가 계신다.
엄마 나이 스물둘,도회지에서 살다가 뭐 모르고 아버지게에 시집온 후 나를 낳았고 내동생들 일곱을 낳아서 다 길러내신 훌륭한분.
그 뒤에는 울엄마의 특별한 희생이 뒤따른다.
가난한 집의 막내 며느리로 시집은 왔지만 큰아버지와 큰엄마의 부재로인해 할머니를 비롯하 큰집 5 남매까지 삯일을 해서 내자식 네자식 편견없이 말ㄹ없이 길러내신분.
그더택에 울엄만 이제 갓 육십을 넘기셨는데 남보기엔 팔십을 훌쩍 넘긴것같은 초췌한 모습을 볼때마다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온다.
울엄만 날 비롯에 내리 딸만 다섯을 낳았고 이후로 아들 둘을 낳으셨다.
딸만 낳은게 죄도 아니건만.
죄인처럼 따뜻한 미역국 한사발도 못얻어먹고 오전에 아일 낳으면 한두시간 누워계시다가 곧장 일하러 나가셨던 모습들은 어린 나이에 보고자랐던 탓에 엄마 생각하면 눈물만이 나올뿐이다.
그러다가 첫 아들을 낳았을땐 온동네 사람들이 모두다 기뻐했을 정도로 그런 귀하고 귀한 첫아들을 얻고 밑으론 막내 아들을 얻으셨다
그렇게 자식들을 길러내시느라 힘겨웠을 내엄마..
이후로 이젠 걱정없이 사나싶더니
난데없이 귀한 큰아들이 군제대후 몇개월이 지났을까?
위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도 울엄만 하염없는 기도와 눈물만 흘렸을것이라는 짐작만될뿐이다
울엄만 우리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진않으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모든가족들은 동생의 투병생활을 도왔지만 발병된지 삼년여
동생나이 스물다섯 보기에도 아까운 그런 나이에 천국으로 보내야만 했던 우리엄만 동생의 마지막모습까지 지켜내셨던 분..
그게 너무 큰 고통이었을까.
엄만 큰아들을 보낸지 며칠이 지나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그때 더욱더 우리가족을 놀라게했던건 이미 두번씩이나 충격으로 뇌손상이 왔었단다.
난 그이후로 생각했다.
당신이 쓰려져있음 병중에 있는 아들이 마음이 아파 더 아들의 병이 더 악화되지않을까 싶어 애써 죽을 힘을 다해 견뎌내신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동생을 보내고 우린 열심을 다해 엄마의 병원생활을 도와 지금 그렇게라도 건강하신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지금은 엄마의하루하루가 통원 치료의 일상이지만
그런거까지도 감사하다
엄마
생각만해도 눈물을 쏟게하는 내 엄마
사랑해요 이 세상 다할때까지 그리고 영원히
신청곡 왁스 엄마의 일기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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