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결혼식 축가를 부르다니.
이주형
2018.12.06
조회 153
재작년 11월 중순
친하게 지내는 선배형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12월 며칠날 시간 되나?"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다름이 아니고 우리 첫째아들이 결혼한다.."
"예??? 벌써 그렇게 됐어요?그럼 당연히 가야죠~"
"그런데 오는 건 당연히 와야하는데 부탁이 있어서...그날 와서 축가좀 불러줘라!"
"예? 축가요?"

재작년에 내 나이는 53세..그리고 미혼.
순간 허탈하고 어의가 없었다.

예전에 친구들 결혼식 사회는 많이 봤었다.
후배 결혼식 사회도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건 벌써 아주 오래전 일이다.

"형~~제 나이가 지금 몇인데 결혼식 축가를 불러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지금 제 나이는 주례를 볼 나이지.. 축가를 부를 나이는 아니예요~"
"주례는 구했어..노래 한곡 와서 불러라..
"아니..아들 친구중에 노래 잘 하는 아이 찾아 보세요..많을텐데요~"
"안찾아 본거 아닌데..없다.너밖에 없다"
"안돼요...나이 50 넘어 아직 장가도 못갔는데 무슨 축가를 불러요?"
"하여간 너가 하는 거로 알테니까 준비해라~"

이 형은 알고 지낸지 벌써 38년이나 되었고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아직 공직에 있는 형인데 고집이 많이 쎄다.

이런 형을 이길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래도 조금씩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장롱위에 올려진 통기타를 내려서 먼지를 털어내고 기타줄을 끼우고 슬슬 기타연습을 했다.

오랜시간 기타를 만지지 않았기에 손가락도 단련시켜야 했다.

그런데.... 무슨 노래를 해야하나??
요즘은 결혼식에서 무슨 노래를 할까??

고민끝에 찾아낸 노래는 푸른하늘의 (축하해요~)
예전에 한참 자주 듣던 CD에 들어있던 노래였다.

괜찮을까??
대놓고 축하하는 곡이라 무리는 없을듯 싶다.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준비는 하고 있지?"
"형~다른 사람 찾아 보면 안돼요?"
"없다니까...너 밖에 없어."
"찾아 보면 여기 저기 많을텐데요~~"
"물론 없는건 아니겠지만 아무나 축가를 부르는 건 아니잖냐..너니까 내가 시키는 거야"

고집이 워낙 센분이라 이길 순 없을것 같아서 일단 그정도에서 또 통화를 마쳤다.

이쯤되면 내가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르는 줄 알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중 고등학교 때는 노래를 꽤 잘하는줄 알았고 그래서 대학가요제에 나가려 기타도 열심히 배우고 노래도 자주 불렀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을 하는 바람에 교내 동아리 가입이 어려워 포기했었고
겨우 MT 같은 자리에서 다같이 싱어롱 할때 기타 실력발휘를 하곤 했었다.

노래방이 생기면서 누구나 노래솜씨를 발휘하는 시대인데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에
나의 어릴적 착각은 일찌감치 깨우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형은 나를 아주 능력자로 생각 하는것 같았다.

지금으로 부터 한 20여년전.
선배형 직장에서 작은 카페를 빌려서 송년회를 한다는데 와서 노래좀 하라고 한다.
그래서 그때는 몇곡 불렀었고

또 한번은 그 형이 근무하는 관청에서 아침 근무 시작전에 노래와 율동 하는게 있는데 그 노래를 녹음하자고 해서
카세트에 통기타 치며 노래를 불러 녹음을 해 준적도 있다.

그런데...이건 좀 아니었다.

또 전화가 왔는데 그때는 친구들하고 송년회를 하는 중이였다.
술김에 화끈하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겠노라고 했다.

그런데...노래는 그렇다 치고 외모가 문제였다.

요즘 머리숱이 급격히 빠져서 보기가 안좋아 아예 빠빡 깍고 있었기에 이 모습으로 단상에 오를 순 없었다.

무엇으로 이 머리를 감춰야 할까??
시내에 나가 중절모를 하나 샀다.

중절모를 써 보기는 처음인데 쓰고 나니 봐줄만 했다.

그렇게 그날이 되었고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도 이 상황에 깜짝 놀란다.
어떤 후배는 도저히 못봐주겠다고 밖에 나가 있겠다고 한다.

축가를 부르는 상황만 아니었으면 참 화기애애한 좋은 자리였는데 나는 긴장해서 안절부절 했다.

결국 축가는 시작되었고 중간 정도 부르는데.. 입안이 이상하다.
침이 어딘가엔 고여 있는데 입안은 침이 말라 입속이 무척 불편하다.
어?? 왜 이러지??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아 소리가 거칠다.
아~~어쩌지??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야~~너 기타 치며 노래 한두번 불러봐??
왜 이리 허둥대고 있어???'

안되겠다 싶어 가사 한마디 쉬고 침을 한번 꼴깍삼켰다.
한결 낫다..

휴~
노래는 전체적으로 무리없이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노래 한곡을 마치고 내려왔다.

다행히 망신을 당하진 않은것 같았다.
보는 선후배들이 잘했다고 위로를 한다.

이 나이에 이게 뭐람~~~

어떤 후배는 자기 아들 결혼식에도 와서 축가 불러 달라고 약을 올린다.

다시는 다시는...그럴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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