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소복 소복 쌓였습니다.
아침부터 눈이 제법 많이 왔어요.
우산을 받치고 출근하던 길에 떨어진 장갑 한 짝을 보았어요.
눈 속에 묻힌 빨간 털장갑이었습니다.
'누가 주머니에서 빠졌나보다.'하고 지나치다가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고, 어머니께서 나가서 찾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교 갔던 길을 되짚어 눈 속에 묻혔을 장갑을 찾으러 몇 번을 왔다갔다 했어요.
하지만 결국 장갑을 못 찾고, 집에 들어가면 더 혼날 것 같아서 집 주위를 맴맴 돌았습니다.
부모님 잠 드시면 몰래 들어갈 요량이었지요.
날은 춥고, 손도 발도 꽁꽁 얼어서 문닫은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웅크린 채 밤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때 멀리서
"아가~ 어딨냐~"하고 저를 애타게 찾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어린 마음에 혼은 안 나겠구나 싶어서 얼른 뛰쳐 나갔습니다.
엄마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언 손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 주셨습니다.
엄마는 장갑 한 짝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칠칠치 못한 딸의 성격을 고쳐 주고 싶으셨겠지요.
엄마의 바람이 무색하게 저는 지금도 우산이며 볼펜이며 늘 뭔가 흘리고 다니면서 삽니다.
그래도 지금은 오리털, 거위털에 방풍, 방수, 방한이 다 되는 외투를 입고, 주머니도 깊어서 장갑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요.
요즘은 장갑 쯤이야 잃어버려도 혼을 내는 부모님도 안 계시겠지요.
뭐든 풍요롭게 넘치는 세상이니까요.
그래도 어린 시절 어머니의 꾸지람이 그리워지는 하루입니다.
눈길 조심하시고요.
배따라기의 '아빠와 크레파스'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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