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이 저의 어머니 칠순이예요.오늘도 한복 만드는 일을 하시지만 아버지 하시던일이 잘풀리지 않아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한복일을 하셨어요.처녀때 배운 한복 만드는일을 여섯식구 생계때문에 하시게 된거죠.
저의 어머니 자랑부터 할게요.며칠있음 101세 되시는 저희 할머니를 작년까지 모시고 살다 요양원에 모셨어요.어머니 아버지 두분 모두 밖에서 일을하셔 할머니께서 손수 밥을 챙겨드셨는데 어릴때 다친 한쪽눈과 성했던 나머지 눈마저 완전히 실명해 홀로는 아무것도 못하셔 어쩔수 없이 집근처 요양원에 모셨어요.요양원에 가시던날 아버지 어머니 몰래 우셨단 얘기듣고 저자신도 울컥했었던 기억납니다.함께 계셨던 동안 어머니는 의정부시 노인회에서 주시는 효부상도 받으신적 있거든요.'반백년'을 모시고 사시며 저희 삼남매에게도 본보기를 보여주신 분이라 저도 그렇지만 시집간 여동생들도 윗어른 공경하는건 절로 몸에 뱄다 자부합니다.어제도 할머니께 다녀왔지만 아래앞니 네개뿐이어도 담에 올땐 떡사오란 말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장남으로서 또 11살 아들,딸 쌍둥이 아버지로서 어머니 칠순을 맞으며 상투적이지만 '불효자'란 단어가 자꾸만 제 가슴속으로 밀치고 들어옵니다.저도 며칠있음 오십살이 돼지만 지난날 제자신 돌아보면 절로 한숨이 납니다. 사춘기때부터 못된짓으로 학교에 경찰서에 들락거리시게했고 일하러간 태국 깐차나부리에서 신문에도 날정도로 큰 교통사고로 옆에서 운전하시던분은 사망하시고 저는 거의 한달만에 깨어나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거의 2년을 치료받았습니다.그때 공항에 마중나오셨던 어머니 첫마디 '살아와서 고맙단 말씀' 생각나네요. 불법 취업자 신분이라 어떠한 보상도 없었구요.또 5년전엔 직장에서 일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척수손상으로 인해 2년 가까이 치료받았습니다.올해5월달엔 이직한지 두달된 직장의 체육대회서 접질린 오른쪽발이 물리치료도 받고 침치료 또 반깁스까지해도 나아지지 않아 MRI찍어보니'부주상골 증후군'이란 진단명 나와 8월말 수술하고 현재도 쉬고있습니다.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기존에 갖고있던 질병이라 산재도 적용받지 못하고 실업자로 지내고 있습니다.그회사에서는 퇴사처리를 해버렸더라구요.고용노동부 찾아가 치료중 퇴사처리 문의했더니 수습기간 3개월이내에는 가능하단 냉정한 현실을 알게됐구요.회복되는데로 새직장 구하는것도 제 몫이고 계속되던 불운도 제가 감당하고 헤쳐 나가야할 저의 운명이었기에 원망은 안하기로했습니다.하지만 장남에 외아들인 저땜에 골치아픈 부모님께 한없이 죄송하단 생각을 떨칠수가 없습니다.저도 늦은 결혼에다 2년만에 쌍둥이 감사하게 만났지만 이 아이들 무뤂만 쓸려도 또 독감걸려 죽도 못넘기고 기운없이 시름만해도 안쓰러워 가슴이 쓰라린데 저의 부모님은 그많은일 얼마나 먹먹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속이 한없이 추워집니다.사춘기때부터 친구들과 나다니는게 좋아 공부안하고 지내왔던건데 가정형편 추락해 제게 뒷받침을 못해줘 지금까지도 이렇게 고생한다고 엊그제 크리스마스 이브날도 쌍둥이 아빠가 못주는 용돈주려 오셨다가 말씀하시길래 제발 이젠 그런 생각 하지마시라 매번 얘기해도 태국서의 일이후로 이어졌던 불운때마다 두분탓을 하시는게 참으로 죄스럽습니다. 매일 아침 맘속기도로 더이상의 불운은 저를 위해서도 또 더이상 할머님 부모님 놀라지 않으시게 그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주변 안정된 친구들 만나고 와서 부모님 생각하면 무척이나 죄송한 맘이 들어요.
그 고된 바느질로 허리굽어지는게 또렷이 느껴지는데 내일도'한복일'하러 가셔야할 어머니 생각해 또다시 기운내 보려합니다.그동안 하지 못했던 장남 노릇을 제 평생 후회하기전에,더 늦기전에 해야겠습니다.
이제 저땜에 걱정하시는일 없도록 할게요.열심히 살겠단 약속보다 더는 놀래키지 않는 아들 되고싶어요.그리고 결혼후 다칠때마다 안그래도 겁많은 사람,인큐베이터에 오래있다 나온 쌍둥이 키우기에 지치도록 애쓰는 사람한테 불안에 떨게했던거 진심으로 미안했단말 하고 싶어요.앞으로는 저땜에 웃을일이 많아지길 바래봅니다.
신청곡은 어머니의 애창곡 --조용필 그대 발길 머무는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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