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호박잎을 잎맥의 까실한 줄기를 벗기고
깨끗이 씻어서 뜸들 무렵의 밥 위에 얹어 부드럽고 말랑하게
쪄내는 한편 뚝배기에 강된장을 지진다
된장이 맛있어야 한다
된장을 뚝 떠다가 거르지 말고 그대로 뚝배기에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마늘 다진 것,
대파 숭덩숭덩 썬 것과 함께 고루 버무리고 나서
쌀뜨물 받아 붓고 보글보글 끓이다가
풋고추 썬 것을 거의 된장과 같은 양으로 듬뿍 넣고
또 한소끔 끓이면 되직해진다
다만 예전보다 간사스러워진 혀끝을 위해
된장을 양념할 때 멸치를 좀 부숴 넣어도 좋고,
호박잎을 밥솥 대신 찜통에다 쪄도 상관없다
쌈 싸먹는 강된장은 슴슴하고도 되직해야 하기 때문에
집 된장이 좀 짠 듯하면 양파와 표고버섯을 잘게 썰어 넣으면
되직해지면서 맛도 더 좋아지지만
이 강된장에서 중요한 건 풋고추이다
풋고추의 독특한 향기는 강하되
매운 맛은 너무 독하지도 밍밍하지도 않은,
생으로 아작 깨물고 싶게 싱싱한 풋고추를
된장 반 풋고추 반이 되도록 넣어야 한다
새로 지은 밥을 강된장과 함께 부드럽게 찐 호박잎에 싸먹으면
밥이 마냥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움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흐믓하고 나른해진다
그까짓 맛이라는 것, 고작 혀끝에 불과한 것이 이리도
집요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그 맛은 반세기도 너머 전의 고향의 소박한 밥상뿐 아니라
뭐든지 넝쿨 달린 것들은 기를 쓰고 기어 올라가던 울타리와
텃밭과 장독대뿐만 아니라 마침내 고향에 당도했을 때의
피곤한 안도감까지를 선연하게 떠오르게 만든다
-박완서 산문집 '호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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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이 강된장에 푹 빠졌습니
글을 어쩜 이렇게 맛있게 쓸 수 있는지...
된장 몇큰술, 다진마늘 몇큰술... 이런 요리 레시피보다
훨씬 사실적이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나도 끓여먹어보고싶게 만드는 호소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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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곡: 허인순의 '밀밭길 추억'
예전에 남편이랑 연애시절에 이 곡 가사가 좋아서 연애편지에 적어
보내곤 했답니다
다시 듣고 싶습니다
유영재님, 꼭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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