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참치선물세트에 행복했던 중학교시절 기억
이철민
2009.09.13
조회 35

초등학교 시절에는 추석이 다가오는 게 겁났습니다.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친척들이 용돈을 줘서 좋아하던 프라모델을 살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기는 했지만, 유치원생 한 명도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지는 통일호 열차에서, 몇 시간씩 서서 익산으로 내려가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웠죠.

화장실 가기도 너무 힘겨워 초등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이용 병에 오줌을 살짝 싸고 구석에 몰래 놓고 내렸던 아련한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온 시골인지 몰라도, 도착하면 배가 몹시 고팠고, 저는 할머니에게 인사드리게 무섭게 어르신들이 만들어 놓은. 소시지와 꼬치전(파와, 맛살, 햄이 절묘하게 조합된 최고의 먹거리죠)을 먹기에 바빴습니다.

사실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부모님께서 무슨 선물을 들고 시골에 내려가시는지.
그거 있지 않습니까?
선택적 자각이라고. 저의 관심사는 어른들에게 받을 용돈과, 오직 먹거리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할머니가 추석부터 다음해 봄 까지 저희 집에서 지내시게 되면서부터, 더 이상 시골에 내려가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속된 말로 저는 시야가 트였습니다. 추석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선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쉽게 말하면, 저희 속물적 욕망은 하나 더 늘어나게 된 겁니다. 용돈, 먹거리. 선물세트

그러나 저는 다른 선물세트에는 하나도 관심 없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열렬히 사랑하게 된 참치만이 오직 제 마음 속의 선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것은 다 해주시는데 이상할 정도로 참치만은 사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주머니에 손 넣으면 맨 날 동전만 잡히는 어린 학생에게 그것을 사먹을 수 있는 여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석날만 되면 참치선물세트만 들어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건만, 그 당시 트렌드인 치약과 샴푸선물세트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덕분에 추석만 지나면, 3개월 정도 쓸 수 있는 생필품을 차곡차곡 쌓아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아무리 봐도 전혀 배부르지 않는 생필품 세트는 저의 어린 마음을 무던히도 실망시키곤 했습니다. 참치에 밥 비벼먹고, 라면과 함께 곁들이면 입에서 침이 좌르르 흘러내리는데, 그것을 쌓아놓고 먹는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유치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먹신’은 살아계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 추석쯤으로 기억합니다. 이번에도 여전히 치약, 샴푸, 비누가 오순도순 모인 선물세트로 성 쌓기가 진행되고 있었죠.

아! 정말 가슴이 시려왔습니다. 참치로 탑을 쌓아야하는데 현실은 저의 바람과 완전히 반대로 흘러가고 있던 추석 전날. 갑자기 셋째이모께서 큰 선물세트 하나를 들고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반갑게 이모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모 어쩐 일이세요.”
저는 예리한 눈빛으로 선물세트를 응시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이거 주려고 왔다.”
이모는 말 끝나기 무섭게 상당히 무게가 나가는 선물세트를 저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게 뭐예요?”
저는 직감적으로 제가 원하던 선물인줄 알았지만 태연하게 연기하면서 이모에게 물었습니다.
“참치선물세트야. (둘째딸) 하영(가명)이가 회사에 받아온 건데 (큰딸) 해영(가명)이도 똑같은 걸 받아와서 하나 가져온 거야. 우리 조카가 왠지 좋아할 것 같아서”
저는 이모의 말이 끝난 후, 감격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모 정말 잘 먹겠습니다.”
“언니 그거 왜 가지고 왔어”
어머니는 역시 참치에 반감을 가지셨지만. 저는 혹시라도 뺏길까봐 줄행랑치듯 저의 책상 밑에 낼름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참치세트와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추석이 끝난 후, 저는 그 참치를 박스에서 모두 빼내. 저만의 비밀장소에 숨겨놓고 엄마 없을 때만 하나씩 몰래 따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지금은 참치선물세트가 흔해져서 이제 감흥이 없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를 간절히 사랑하진 않지만, 중학교 시절에 이모님께서 한 아름 안겨주신 그 선물세트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치약세트가 대세이던 시대에 유난히 독보였던 참치여.
나의 미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그대여!
영원히 번영하리.

그럼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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