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시댁의 변화가 시작되던 추석이였습니다.
김윤경
2009.09.16
조회 21
1996년 추석은 제가 결혼해서 처음 맞는 명절이였습니다.
길 막히는 것 피해서 간다고 시댁을 가려면 밤 12시를 넘어 출발했는데, 우리만의 생각이 아니였지요.. 도로는 정말 대낮과도 같았습니다.
논인지? 밭인지? 길은 분명 아닌 듯 한데.....
동물적인 육감으로 찾은 지름길, 아님 말구... 되돌아 나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도로 위의 차에서 내려 걷다가, 뒤따라온 차에 올라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립습니다.

시댁은 4남 4녀, 저희 남편이 아들중 3번째지만 마지막으로 결혼했습니다.
며느리들은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명절 준비로 어머니 눈치보며,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는데, 남자들은 먹고 마시고 구들장에 엑스레이 찍는게 일이였습니다.

어머니가 송편을 만들자고 반죽을 내 놓으셨는데, 뒤로 넘어갔습니다. 2말!,
며느리들은 떡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시집간 딸들에게 보내줄 마음에 2말도 적으신듯 했습니다.

아주버님 2분을 제외하고 남편과 시동생을 불렀습니다.
“자기야~ 준영아빠~ 이리들 오시지요. “ 고양이 이 앓는 소리로 불러 옆에 앉혔습니다.
어머니는 “남자들이 뭘 하냐고, 별일이다 저리 비켜라” 야단하셨습니다.
“어허~ 움직이 말고, 어서 시작하시지요. 호호호”

형님들과 동서는 뭐라 말은 못하고 제게 찡긋거리며, 눈으로 말하더군요.
‘그러지마. 그만해.’
금쪽같은 아들들 시킨다고 여자가 어떻고 남자가 어떻고, 송편 빚는 내내 어머니는 읊으셨습니다. 귀에 말뚝 박았지만, 사실은 바늘방석 이였습니다.

그다음은 전 부치기, 그것도 장난 아니였습니다.
‘아니 어머니 정말 어머니 손 크시네요.“ 떡 벌어진 입으로 하고 싶은 말 다 한거지요.

형님들, 동서는 간 밖으로 내놓은 제 옆에서 안절부절 난리가 났습니다.
또 불렀습니다. “자기야! 준영아빠!”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은 안하셨는데, 바가지와 바구니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여러번 날리셨습니다.

1996년 추석은 처음으로 우리집 남자들이 송편을 빚고, 전 부친 날입니다..

그날 밤 며느리들 자는 방에 오신 어머니, 얘기 그만하고 자라고 불을 꺼버리셨습니다. 하하하.

어머니 연세는 87세입니다. 옛날 분이라 처음에 받아 들이는게 어려우셨겠지요...
지금은 아들, 며느리들 모여 앉아 하하 호호 송편 빚고, 전 부치는 모습을 보시면, 흐뭇해 하십니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