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양복
정현주
2019.04.14
조회 101
박승화님. 반갑습니다.
저희 아빠는 시골에서 엄마와 함께 밤과 감농사를 짓고 삽니다. 두 분은 농사 는 일 말고 잘하시는 게 없습니다. 오로지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았어요.
“이 아빠가 가진 건 돈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집 보물은 너희들이다.”
아빠가 항상 우리 남매에게 하신 말씀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 저는 우리집이 정말로 부자인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우리들을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겁니다.
그런 아빠가 지금은 예전만큼 건강이 좋지는 않습니다. 3년 전에 큰 수술을 받고 쉬고 계셔서 힘든 일은 못하시거든요.
친정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갔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술을 들고 갔지만, 요즘은 빵과 과일 등을 챙겨 갑니다.
부모님의 방엔 감색 양복이 장롱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어요.
“아빠! 뭐 양복 입을 일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곧 친구분 딸의 결혼식에 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아빠는 양복이 없어서 설움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친척 장례식장에 가셔야 하는데 아버지에게는 마땅한 양복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양복 안 입고 왔다며 사촌 동생이 뭐라고 했다는구나!”
엄마가 화를 냈습니다.
사실 아빠는 평생 농사만 짓다보니 양복 입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아빠에게 있는 양복은 우리가 결혼할 때 사입은 거였는데, 세월이 흘러 유행에 뒤쳐졌고 아빠 배가 나오는 바람에 작아서 입기 불편했나 봅니다.
평소에 양복을 안 입는 사람은 양복이 불편합니다. 현장일하는 저희 남편도 어쩌다가 양복 입으면 넥타이를 느슨하게 해놓거든요.
그래서 아빠는 까만색의 깨끗한 점퍼를 입고 친칙분의 장례식장에 가셨답니다.
“에이 형님~ 옷차림이 그게 뭡니까?.”
아빠의 사촌 동생이 술이 좀 취한 상태에서 아빠의 옷차림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쯧쯧하며 혀까지 차더랍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 친척을 다른 데로 데리고 나가서 별 일은 없었지만 아빠는 무안했답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산다면 창피할 일은 없는 거야.”
평소에 그렇게 말씀하신 아빠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당장 양복 한 벌 사드리려고 가게에 가봤습니다. 하지만 양복값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손 내밀기 싫어 저는 큰 돼지저금을 사서 동전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동전이 차기 전에 남동생이 결혼을 하는 바람에 양복이 한 벌 생긴 겁니다.
결혼식장에 가서 제 남편처럼 넥타이를 자꾸만 매만지는 아빠의 모습이 상상됐습니다.
*신청곡 조동진-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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