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사 형제인데요, 언니랑 저는 연년생이에요. 그리고 제 밑으로 쌍둥이 동생이 있고요.
5월이면 소풍이며, 체육대회며 학교에도 행사가 많습니다.
요즘은 소풍을 가도 아이들이 그냥 음식을 사 먹지요.
체육대회 때는 학교에서 급식을 하고요.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어린 시절 소풍과 운동회 때 어머니께서 싸주신 김밥을 먹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때나 얻어 먹을 수 있었던 김밥은 왜그리 맛있었던지요.
비릿한 김냄새, 단무지의 달큰함, 시금치에서 나는 참기름 냄새, 귀한 계란말이까지.
비록 햄은 없어도 알록달록한 김밥을 하나하나 집어 먹을 때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었습니다.
그런데 숱하게 먹었던 어머니 김밥보다 제 기억을 사로잡는 김밥은 언니가 싸준 김밥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뒤에 트럭이 오는 소리를 못 들으셔서 피하지 못하셨던 어머니 발등을 트럭이 밟고 지나가서 입원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네 형제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요.
언니는 4학년, 동생들은 1학년이었어요.
하필 그때 소풍을 갔는데, 저는 어린 마음에 점심은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어요.
김밥을 안 싸가면 얼마나 창피할까,
뭐 사먹을 돈을 아빠가 주실까 안 주실까 그런 걱정을 하며 잠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아침에 눈을 떠보니 새벽부터 언니가 김밥을 싸고 있었던 거에요.
한 번도 김밥을 싸 본 적 없는 언니가 어깨 너머로 배운 김밥을 싸고 있었던 겁니다.
처음엔 속이 한 쪽으로 몰려서 자꾸 터졌는데, 한 줄 한 줄 쌀수록 속이 가운데로 가고, 터지지도 않더라고요.
칼에 참기름을 묻혀가면서 부서질까봐 살살 김밥을 썰어서 나무 도시락에 하나하나 담고 있던 언니 모습은 40년이 흐른 지금에도 제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합니다.
맏이란 그런거겠지요.
어린 동생들은 터진 김밥을 주워 먹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고,
언니는 하나 하나 정성껏 김밥을 담아 동생들 가방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 김밥이 맛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김밥을 싸 갔다는 기쁨만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어린 소녀가 몇 시부터 일어나서 김밥을 쌌을까요?...
지금도 티 내지 않고 동생들 챙기는 우리 언니.
그 시절 11살의 우리 언니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언니, 고마워."
사랑하는 우리 언니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안치환의 '사랑하게 되면' 신청합니다.

언니의 김밥
김은경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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