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나댔던 그날의 추억
오동석
2019.06.09
조회 79
대학시절, 여기저기 꽃향기가 만발하던 봄에 대학 내에선 장미축제로 한창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친구들 두명과 함께 저희도 축제분위기를 느껴려고 공강시간에 찾아갔는데

같은 경상대에서 자주 보였던 미모의 여대생 세 명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더라구요.
보기만 했지 정확히 무슨 과인지도 모르고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는데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 건지, 어쩐건지 암튼

저희는 즉석미팅에 대한 바램이 강해져서 셋 중에 그나마 인물이 가장 나은 승현이를 부추겨 그 여대생들에게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승현이 뒤에서 '우리도 쟤랑 한 친구들이에요!' 라는 식의 잰틀미소를 남발하며 서 있었죠.

몇마디 대화가 오고가는 듯 하더니 금새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승현이가 장한 일을 해낸 것에 감탄하며 기쁨이 벅차오르던 것도 잠시!
저는 하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고성을 지르며 방방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로만 들어왔던 벌에 제대로 한방 쏘이고 말았던 겁니다ㅠ
​꽃축제라 별들이 여기저기 보이긴 했지만 어디 쏘일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벌에 쏘여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벌침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대다
시커먼 벌침까지 꾸물대며 팔에 꽂혀서 좌우 사방으로 움직이는 듯 하자
저는 완전 이성상실해서 반 미친 놈 처럼 방방뛰며 울부짖었습니다.
​"아아악!!! 어떡해!!! 나 어떡해!!!! 아아아아악악악!!!!"

저 앞에서 미팅주선에 막 성공한 듯 여유있어 보였던 승현이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제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드라구요.
그래서 일부러 승현이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현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고자 더욱 더 큰 소리로 악을 썼습니다.
"승현아, 나 방금 벌에 쏘였어! 아프다. 너무 아퍼!!! 아아아아악악! 어떻게 좀 해줘봐!!!"

그런데 가만 보니 아파죽을 것 같은 사람은 오직 저 하나로 족했고,
죄다 동물원 구경난 듯 쳐다보며 키득거리는 사람,
저 아저씨 왜 저러냐며 묻는 아이들,
벌 쏘이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며 벌 조심을 가르치는 엄마들까지...ㅠ
참 다양하더라구요ㅠ

"아따, 총각이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겁이 엄청나게 많네. 이리 팔 내놔보소~"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자분이 나타나 순식간에 시커먼 벌침제거 돌입!
벌침을 제거하니 그나마 통증이 가라앉더군요.

마음을 진정시키자,
바로 몇분전까지 최대 염원이었던 미팅이 생각나 친구쪽을 보니,
이미 여자들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고, 거덜난 표정으로 승현이는 절 노려보고 있더군요.
벌침에 쏘여 수습불가 오두방정을 떤 제 책임이 100%라는 표정이었죠.

미안하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아픈데 괜찮냐는 친구 하나 없고,
저는 그 순간,
미팅에 재뿌린 놈! 다된 밥에 코 빠뜨린 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벌에 쏘이고 싶어서 쏘였냐...
방정 떨고 싶어서 떨었냐...
이러고 싶었지만 친구들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강의실이나 학교 부근에서 자주 마주쳤던 그 여대생들은
절 볼 때마다 유명 개그맨이라도 납신 것 마냥 폭소를 터트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그 날의 제 오두방정이 선명히 오버랩되면서
하늘이 노래지고, 머리 속이 아득해지고,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느낌만 온 우주에 가득했답니다...
정말 그땐 내 이미지가 벌에 쏘여 방정떤 놈으로 평생 굳어지나 싶어 정말 불안했었는데
그런 가슴앓이도 이젠 다 추억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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