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여기저기 꽃향기가 만발하던 봄에 대학 내에선 장미축제로 한창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친구들 두명과 함께 저희도 축제분위기를 느껴려고 공강시간에 찾아갔는데
같은 경상대에서 자주 보였던 미모의 여대생 세 명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더라구요.
보기만 했지 정확히 무슨 과인지도 모르고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는데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 건지, 어쩐건지 암튼
저희는 즉석미팅에 대한 바램이 강해져서 셋 중에 그나마 인물이 가장 나은 승현이를 부추겨 그 여대생들에게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승현이 뒤에서 '우리도 쟤랑 한 친구들이에요!' 라는 식의 잰틀미소를 남발하며 서 있었죠.
몇마디 대화가 오고가는 듯 하더니 금새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승현이가 장한 일을 해낸 것에 감탄하며 기쁨이 벅차오르던 것도 잠시!
저는 하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고성을 지르며 방방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로만 들어왔던 벌에 제대로 한방 쏘이고 말았던 겁니다ㅠ
꽃축제라 별들이 여기저기 보이긴 했지만 어디 쏘일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벌에 쏘여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벌침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대다
시커먼 벌침까지 꾸물대며 팔에 꽂혀서 좌우 사방으로 움직이는 듯 하자
저는 완전 이성상실해서 반 미친 놈 처럼 방방뛰며 울부짖었습니다.
"아아악!!! 어떡해!!! 나 어떡해!!!! 아아아아악악악!!!!"
저 앞에서 미팅주선에 막 성공한 듯 여유있어 보였던 승현이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제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드라구요.
그래서 일부러 승현이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현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고자 더욱 더 큰 소리로 악을 썼습니다.
"승현아, 나 방금 벌에 쏘였어! 아프다. 너무 아퍼!!! 아아아아악악! 어떻게 좀 해줘봐!!!"
그런데 가만 보니 아파죽을 것 같은 사람은 오직 저 하나로 족했고,
죄다 동물원 구경난 듯 쳐다보며 키득거리는 사람,
저 아저씨 왜 저러냐며 묻는 아이들,
벌 쏘이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며 벌 조심을 가르치는 엄마들까지...ㅠ
참 다양하더라구요ㅠ
"아따, 총각이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겁이 엄청나게 많네. 이리 팔 내놔보소~"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자분이 나타나 순식간에 시커먼 벌침제거 돌입!
벌침을 제거하니 그나마 통증이 가라앉더군요.
마음을 진정시키자,
바로 몇분전까지 최대 염원이었던 미팅이 생각나 친구쪽을 보니,
이미 여자들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고, 거덜난 표정으로 승현이는 절 노려보고 있더군요.
벌침에 쏘여 수습불가 오두방정을 떤 제 책임이 100%라는 표정이었죠.
미안하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아픈데 괜찮냐는 친구 하나 없고,
저는 그 순간,
미팅에 재뿌린 놈! 다된 밥에 코 빠뜨린 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벌에 쏘이고 싶어서 쏘였냐...
방정 떨고 싶어서 떨었냐...
이러고 싶었지만 친구들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강의실이나 학교 부근에서 자주 마주쳤던 그 여대생들은
절 볼 때마다 유명 개그맨이라도 납신 것 마냥 폭소를 터트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그 날의 제 오두방정이 선명히 오버랩되면서
하늘이 노래지고, 머리 속이 아득해지고,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느낌만 온 우주에 가득했답니다...
정말 그땐 내 이미지가 벌에 쏘여 방정떤 놈으로 평생 굳어지나 싶어 정말 불안했었는데
그런 가슴앓이도 이젠 다 추억이 되었네요^^

본의 아니게 나댔던 그날의 추억
오동석
201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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