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토마토농장 주인의 눈물
"어 이게 뭐지?"
쪼그리고 앉아 멀뚱멀뚱 바라본 것은 어린 토마토나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모르는 사람이 심어 놓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비둘기가 토마토를 먹고 똥을 쌌는 지 과일안주를 먹은 취객이 트럼을 했는 지 토마토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던진 것이 그곳에 있었는지 어떤 경로로 이 화분에 씨가 내려와 싹을 틔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활짝 웃으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벅찰만큼 기뻤습니다.
2년 전 고구마 농사로 가슴이 아려 다시는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사실 버림받은 그 화분에는 잔디가 크고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로 시들시들한 차에 올 여름 고온다습에 게릴라성 폭우가 잦은 아열대기후로의 행진은 그것마저 숨통을 끊어 놓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잔디는 토마토나무의 양분이 되어 한 그루 토마토나무를 하루가 다르게 키워냈습니다. 유독 비가 많이 온 탓에 더 빨리 자라는 것도 같았습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이면 물도 주고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토마토 나무의 키는 뻥을 좀 쳐서 백년묵은 은행나무 만큼 자랐습니다. 가지사이마다 뾰족한 노란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에서 토마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고구마야 흙속에 있으니 그저 상상으로만 잘 크고 있겠지하는 기대뿐이었는데 하루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어찌그리 행복하던지 일터에 나오면 토마토한테로 달려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이, 토마토농장 주인! 토마토농사는 포기한거여?"
능글맞은 목소리, 비웃는 듯한 목소리, 황소만한 고구마가 주렁주렁 열릴거라며 고구마를 심어주셨던 바로 그분이 오셨습니다. 오며가며 저와 같은 마음으로 토마토나무 엄마처럼 보살펴주신 모양입니다. 그 때 마침 지나는 길에 토마토나무가 약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제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네? 왜요? 토마토에 문제라도 생겼어요?"
웬만한 상식은 아는 바, 바람이 불면 넘어질까봐 나름대로 나무젓가락도 몇 개 세워놓기도 하고 나무옆에 돌맹이도 가져다 놨습니다.
"농사를 짓자는 것여! 말자는 것여! 그래가지고 토마토 팔아먹겄어? 올 추석에 가락시장 경매 안할거여! 농장주인이 이따구로 농사지어서 허허허 저렇게 많이 자란 토마토나무에 나무젓가락을? 나 참..."
그 분은 기가 찼을 지 모르나 나름대로 신경쓴 것인데 한숨만 나왔습니다. '잘 키워야지, 보란듯이 주렁주렁 토마토가 메달리도록...' 다짐에 다짐을 하고 나무젓가락 몇 개를 더 나무 주변에 꽂아 두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누가 뭐래도 난 할 만큼 했으니까 토마토에게 미안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날보다 바람소리가 컸던 다음 날 아침, 출근과 동시에 토마토에게로 갔습니다. 약간의 뿌리가 흔들린 듯했습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서 있는 토나무나무는 튼튼한 쇠막대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새벽5시면 일어난다던 그 어르신이 다녀가신 게 틀림없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태풍 곤파스가 상륙한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에 나름 대처를 해놓은 것 같습니다. 꼼꼼하게 해뒀으니 곤파스가 아니라 물파스 할아버지라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우르르 쾅쾅... 쉬이... 파르르르... "
새벽 5시, 너무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무서운 바람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있을까? 나무가 꺾이는 소리, 간판이 날아다니는 소리, 너무너무 무서워서 굳은채로 침대위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TV 뉴스속보를 보니 전라도해상을 지나 북상중이었습니다.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끊어지고 과수원에 과일이 떨어지고 농작물은 침수가 되었다는 뼈아픈 소식들이 발을 동동 구르게 했습니다.
그때서야 생각난 토마토. '으악, 자식 같은 토마토...'
언제나 그랬듯이 폭우, 폭설, 폭풍이 올 때면 멈추거나 잔잔해질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정오가 되기전에 이미 동해로 빠져나갔다는 보도도 있었고 밖을 보니 비도 멈춘 것 같아 일터로 향했습니다.
아파트유리창이 깨지고 나무가 부러지고 뽑혀 도로의 통행이 어렵다는 보도에도 토마토나무 걱정에 오장육부가 오그라드는 것 같았습니다.
'제발 쓰러져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다오.' 간절히 원하고 또 원했습니다.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목이 메이고 현기증이 났습니다. 이매창의 슬픈사랑보다 덜하지 않을 것 같은 토마토에 대한 사랑도 더이상은 없었습니다. 칼로 베어낸 듯한, 잘려진 나무는 온데간데 없고 무상하게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에 망연자실 했습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가슴이 시렸습니다. 원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태어나서 곱게 자라주었는데...
'밖에 두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 때늦은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신청곡>
꿈이어도 사랑할래요 - 임지훈
천둥 - FT아일랜드
월요일, 행복한 시작이길 바랍니다. 풍성한 추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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