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이벤트]그리운 설날 기억들
이인화
2011.01.17
조회 37
1960년대는 정말 가난했지요. 납작납작 집들이 모여 있는 좁은 골목에선 건너편 집안의 살림살이가 다 들여다 보일 정도였지요. 기워 입은 속옷과 해마다 털실 풀어 짜 주신 털바지는 몇년씩 같은 색을 입어야 했어요. 우리 땐 도시락 못 싸온 아이들도 여럿이었고, 저희 반만 해도 중학교 진학을 못 한 아이들도 몇 명씩 있었지요. 그랬기에 추석이나 설에나 2년 정도에 한번 얻어입는 설빔은 정말 설레이게 했습니다.

재래시장에 나가면 고운 색동한복이 걸려 있는데, 엄마는 제 손을 꽉 쥐고 한복집 앞을 그냥 지나갔습니다. 아예 꿈도 못 꾸게 하려고... 자꾸 뒤돌아보는 제 손을 더 꼭 쥐시곤 생선가게나 야채가게로 잡아끄셨지요. 딸에겐 한복 한 벌 안 사 주시고 2~3년은 입음직한 넉넉한 옷을 사서 설빔으로 입히신 울 엄마는 맏며느리...

술 좋아하고 가진 것 없는 월남한 장남 군인 남편 만나 고생하셨기에 딸에게 맘놓고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옷을 해 주실 수 없었을 겁니다.

가난해도 맏며느리기에 엄마는 빈대떡도 한 말(추석엔 송편을 한말), 가래떡도 한 말, 만두는 몇백 송이... 일손이라곤 엄마와 저 둘인데... 작은엄마들은 명절 당일날 곱게 화장하고 나타나서 식사만 하고 가시게에, 그 많은 일거리를 보면 질려서 엄마한테 투정을 부리곤 했지요. 추석 땐 송편을 주먹만하게 만들고, 설 땐 만두를 제 주먹보다 크게 만들고요. 엄마는 아주 예쁘게 빚으시는데, 저는 일이 지겨워서 뭐든 크게크게 빨리 만들 생각만 했답니다. 만두 빚고 가래떡을 보기좋게 써는 엄마를 쳐댜보며, "엄마, 제발 조금만 하자. 맨날 돈 없다면서 음식을 왜 이리 많이 해?"라고 투정 부리면, "작은집들 갈 때 싸 주어야지. 그래도 명절인데..."라고 하시며 허리가 꼬부라지게 일을 하셨지요.

엄마가 나물을 한 광주리 볶는 동안, 저는 심통이 나서 빈대떡도 아주 크게 만들었답니다. 그러면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께선 "우리 인화가 만든 만두와 빈대떡이 최고다. 이북에선 그렇게 크게 만들어 먹지. 이남처럼 조그맣게 만들면 맛이 안 나지."라고 하심녀 제 편을 들어 주셨었지요. 저를 너무나 예뻐해 주신 할아버지가 지금도 자주 생각나 그립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늘 이북애길 들려 주시던 우리 할아버지가 ...

엄마는 20년 전 쓰러지셨던 이후로 요리를 못하십니다. 김장도 200포기씩, 송편이며 만두도 한 광주리 이상씩 하던 엄마가, 이젠 아이처럼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라. 다 잊어 버렸어."라고 하시며 텔레비전만 보시지요.

다시 4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투덜거리지 않고 엄마일 도와 드릴 것 같아요. 만두며 송편도 엄마 따라 예쁘게 만들고요. 추억은 그리움을 키웁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그립습니다.

반포 애청자

*저는 제 건강(알러지와 심장병, 아토피 등)에 꼭 필요한 이온수기를 선물받고 싶습니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