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 어머니의 손맛
김인옥
2011.01.23
조회 33
저는 고향이 제주도인데 30년을 살았습니다. 시댁은 서울인데 명절 음식이 너무 많이 달라서 적응하는데 몇 년 고생했습니다.
할머니, 큰 집 다섯 식구, 우리 아홉 식구, 합이 열 다섯명, 대가족이 한 울타리 살았던 어렸을 적 설 명절은 한 달 전부터 분주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큰 배와 비행기가 수시로 왕래를 하는데, 어렸을 적 추운 겨울 날씨가 나쁘면 배가 제때에 들어오지 않아 설명절 물자가 귀하디 귀한 대접을 받았지요.
큰어머니와 어머니께서 오일장에 가셔서 쌀과 제수용품을 사서 등짐으로 지고 와서 항아리 속에 두셨습니다. 추수한 콩을 자루에서 꺼내어 쭉쟁이를 골라 두부 만들 준비를 하시고 메밀을 가루로 빻아 놓아요.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큰아버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간을 소금에 몇 점 찍어 맛보고, 미리 주문해 놓은 우리 몫에 고기를 새끼줄에 묶어 가져 오셨지요.
아버지께서는 집안을 돌며 칼을 수거해 숫돌에 갈며 이리저리 칼날이 잘 드는지 햇볕에 비춰보며 흐뭇해 하셨습니다.
육지와 떨어져 있던 섬이다 보니 음식이 다른 지방과 많이 달랐는데, 설에 만들어 먹었던 손두부와 순대, 메밀 빙떡이 생각납니다.
명절 사나흘 전부터 할머니, 큰어머니, 어머니께서 손두부와 제주 순대를 만들어 식구들을 먹였어요.
메밀가루와 쌀, 잘게 썬 부추, 약간의 돼지 피에 갖은 양념을 하여 미리 손질된 창자에 재료들을 꼭꼭 채워 넣어 위, 아래를 묶어 장작불을 지펴 가마솥에서 푹 삶습니다.
중간에 꼬챙이로 찔러 보고 내용물이 익으면 꺼내어 썰어서 먹었는데 이 순대맛이 기가 막힙니다.
지금 시중에서 파는 당면이 들어간 순대하고는 비교할 바가 못 되고 격이 한참이나 다르지요.
둘이 먹다 한 사람 없어져도 모른다는 그 맛이지요.
냉장고가 없었지만 추운 겨울이라 시원한 곳에 보관하며 두부와 순대는 아마 열 흘 정도는 실컷 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 고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 있는데요.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바다에서 나는 몸이라는 해초류를 넣고 김치를 잘게 썰어 푹 익혀 소금으로 간을 하여 먹는 몸국인데, 몸국을 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해장국으로 끝내 줍니다.
몸국은 명절 전에 먹고 명절 날 부터는 옥돔으로 국을 끓여 먹습니다.
몸국이 지금은 향토음식으로 지정되어 민속촌에서 맛볼 수 있답니다.
지금 손두부와 순대와 몸국을 만들어 먹는 집이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이야기이고 지금은 명절에 고향에 가기도 쉽지 않고 먹어 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설에 대한 부모님 생각과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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