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옛생각, 옛놀이……
김치홍
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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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기 옆에 떨어진 노란색 껌 종이(쥬시 후레쉬)를 보다가 문득 어린시절 동네 친구들과 지낸시절이 떠오른다.
70년대 중반 지금처럼 놀이문화가 발달한 것도 아니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면서 놀이를 만들며 지냈다.
봄에는 진달래와 아카시아꽃을 따먹으면서, 산에서 전쟁놀이와 숨바꼭질을 하면서 해가 질녁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했다. 지금은 아카시아꽃을 먹지 않지만 그때는 먹거리가 없어서 봄철에 많이 먹던 꽃이다. 달착지근한 그맛은 지금도 머리속에 남아있는 맛이다.
예전엔 흔한 수양버들 나뭇가지를 가지고 만들엇던 버들피리, 그 중에는 누가 더 길게 만드나, 누가 더 먼저만드나 내기도 하곤했다.
딱지치기, 구슬따먹기, 껌종이따먹기, 비석치기, 책받침 치기, 고무공만들어서 차거나 뺏앗기 놀이, 등. 참고로 고무공은 콜타르를 막대에 동구랗게 말아서 굽혀서 만들었다.
지금은 생소한 껌종이 따먹기놀이. 놀이이지만, 그때는 심각한 놀이였다.
우리집은 아버지가 미군부대에 다니셔서 껌을 많이 접할수 있었다.
놀이는 껌(앞), 신(뒤) 이라고하고, 홀이나 짝게임과 동일한데, 단위는 일, 십, 백, …천만, 단위까지 있었다. 단위가 높은 껌종이는 흔히볼수없는 껌이였다.
지금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때는 그 껌종이를 가지고 있으면 천하를 가지고 있는 기분이엇다!
책받침 치기는 학교에서는 책받침을 세워서 한번씩돌아가면서 내리치는 놀이다.
처음에는 살살하다가 감정이 개입되면 힘차게 내리쳤다. 그때가지고 있던 책받침은(사실 병원차트)알미늄이 였기여 아이들에 선망의 대상이였다. 항상나는 제외대상 일순이였다.
아버지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학교생활에 할수 있었다. 먹거리도 그렇게 흔하지 않아서, ○○라면(삼양라면),뽀빠이 하나면 항상 아이들이 들끊었다.
하지만, 난 조금달랐다. 아버지가 미군과 같이 훈련을 다녀오시면,
부대에서 지급하는 시레이션(지금 전투식량)을 드시지 않고, 가져오시면 최대의 선물이였다.
그안에는 일회용 커피,비누, 화장지, 설탕, 소금 기타 과자 및 즉석식품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 코코아 가루는 학교에 가져가면 날리가 날정도였다.
지금도 남아있는 흑백사진을 보면 세월이 많이 흘른 것 같다.
사진속에 계시던 아버지 친구분들은 지금은 많이 안계신다.
오늘처럼 어버이날에는 아버지댁에 들려서 식사나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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