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주 감동깊은 영화을 본것 같다.
한번으로 부족해 두번이나 봤다 워낭소리
정말로 가슴속에 오랜감동으로 남을 영화
이 영화속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지 몰라서
[김기홍님에 블로그에 답글을 남기고 이 글을 다른곳에 올려도 되는확인을 받고 올린 글입니다. 얼마나 고맙던지]
많은사람들이 나랑 똑같은 감동을 받으면 좋겠네요
이 영화를 보면서 몇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님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크크
오랜만에 행복한 눈물을 흐렸습니다...
오프닝...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산위에 있는 절을 계단을 힘들게 오르신다.
그리고 불공을 드리는 모습 그리고 할아버지 손에 줘어진 워낭...
이내 한 번 흔드니 .땡 .땡 그렇게 워낭소리와 함께 시작이 됩니다.
낡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흥겨운 노래가락과 함께 할아버지는
소가 끄는 수레에 앉아 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힘없이 움직이면 수레에서 앉아 잠을 잔다.
한 푹에 풍경을 사진에 담는듯한 느낌 너무나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 정겹다.
할아버지는 주무시고 계시지만, 소는 늘 가는길이 익숙한듯
할아버지에 지시도 없이 묵묵히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어느 날 수의사가 할아버지 집을 방문한다.
얼마 전 소가 쓰러 졌다면서 수의사를 부른 것이다.
수의사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소의 나이를 듣고 놀란다.
그리고는 소를 진찰하더니
할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같이 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떠나버린다.
할아버지는 1년 밖에 살 수 없다는 말에 소가 죽으면
어떻게 농사를 짓나 걱정을 한다.
아니 농사 걱정도 했겠지만 그 속에는 그 소와 나눈 정으로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더 큰 아쉬움이 숨어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왼쪽다리에 침을 잘못 마져 한쪽 다리를
절며 생활하고 계신다.
건강한 사람도 소화하기 힘든 노동의 연속인 농사에 있어서
할아버지의 다리 역할을 해 준 것이 바로 소 였던 것이다.
워낭소리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우리나라에 사계절과
아름다운 시골풍경,삶을 이야기 한다.
추운 겨울을 벗어 던지고 생명의 계절 봄이 다가온다.
본격적인 농번기 철이다.
할아버지는 고단한 몸을 일으켜시고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밭과 논으로 향하신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소가 끄는 챙기를 몰아가며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의 화려한 주연급 조연이 새참을 들고 화려하게 등장
할머니의 등장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훌륭한 조력자이시며,
이 영화속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될 포스를 가진 캐릭터이다.
할머니의 투덜거림은 우리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를 할아버지와 소에게 뺕어 낸다.
할머니의 한 숨어린 소리와 걱정 어린소리 그리고 그 투덜됨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인생을
대변하기도 하고. 할머니 당신의 한 많은 인생을 탄식하기도 한다.
할머니는 소가 업어야 할아버지가 그 힘든 농사를 그만 둘 것을
알고 있기에 항상 할아버지에게 소를 팔자고 조룽 하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할머니는 소 팔자와 당신 팔자가 같다며
신세 한탄을 하신다.
할아버지는 오랜 파트너인 소를 이제는 보내 줘야한다는 생각에
그 소를 대신할 수 있는 일소[농사일에 부릴 수 있는 소]를
구하ㄹ 봉화소 시장을 찾는다.
그리고. 일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며
소 시장에는 암소가 송아지만 가득했다.
그 것도 그런 것이 일소의 자리를 이제는 현대식 장비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으니 과거의 일소의 자리는
점차 줄어 들었고 그 명맥은 끊어 졌다고 봐도 옳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이나 소나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모든 산업이 기계화 되기 전에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동원하여 삶을 이어 왔다.
그리고 지금은 더 발전 된 세상에서 기계을 통해
인간의 노력을 점차 줄어 들고 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할아버지의 소와 우리 인간들의
다른 면 보다는 같은 정이 많을 것이다.
인간도 나이가 들면 할아버지와 같이 이마에 주름이 가득안고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할아버지의 소 역시도 세월의 무상함을 할아버지와 함께
짊어지고는 저 멀리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봉화소시장에서 새끼를 밴 암소 한마리를 사 오셨다.
그런 통에 늙은 소는 외양간을 내어주고는 새벽이슬을 맞으며
눅눅하지 않은 몸을 뉜다.
서글픈 장면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나이 들어서 서러운데 푸대접까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장면이다.
웅성한 대접을 받던 암소는 새끼를 낳고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새 생명의 기쁨을 안겨준다.
그런데 그 기쁨이 오래 가지 않는다.
모내기 등 농사준비로 바쁘게 봄은 훌쩍 지나고 초 여름으로 접어든다
할아버지의 논과 밭에는 농약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집 농사보다 두배 세배 힘들다.
할머니는 또 투덜투덜... 손으로 하나 하나 잡초를 걷어 내는 것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지만
할아버지는 농약을 하면 소를 먹일 풀이 없다며 할머니의 투덜됨도
묵묵 무답으로 회피 하신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서 농약만 뿌리면 잡초만 죽는 농약도 많지만
그 농약으로 인해 사람도 서서히 죽어 간다는 것을 알고서는
우리는 조금 비싸도 유기농. 무농약농산물을 선호한다.
인간이 편하고 많은 것을 원했기에 달콤한 열매와 함께 독을
먹는 어리석음에 우리 할아버지는 우직함으로 버터내신다.
농약을 치면 소에게 먹일 풀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할아버지는 논과
밭에는 농약을 하지 않는다.
소를 위한 결정이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같이 공존하기 위해 자리 하고 있음을
절대로 잃어 버려서는 안된다.
할아버지는 많이 아프시다. 이름 모르는 두통...
우리 부모님도 그러하시지만
뭐 나이들면 원인 모를 그런 병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곤 몇 날을 누워계시다 소가 끄는 수레에 타시고
시내 외출을 하신다.
할아버지는 원인 모를 병으로 CT촬영까지 하지만 의사의 결론은
농사일을 그만 두는 것이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할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충격이라고 할까
할아버지의 소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시 한번 느끼지만 할아버지와 소는 너무도 닮은 점이 많다
그냥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해서 흐른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진관을 찾으신다.
영정사진을 찍으시는데 왜 그리고 부모님에 모습이 생각이 나던데
가슴이 아팠다..
인간은 할아버지 할머니 소와 같이 늙어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서서히 준비하는 것은 인간이 할수 있는
마지막 준비라고나 할까?
우리 주변의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준비.
그 준비에 더하여 평생을 친구와 같이 지낸 소에 대한 서두름 없는준비
우리도 그런 이별을 준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진과 다음 장면은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어느덧 시간은 결실의 계절 가을 그리고 우리들의 명절 추석이다.
오랫만에 할아버지 시골 집에 가족들이 모여 않아 있다.
아들 딸 며느리는 할아버지가 농사일을 그만 두려면 소를 팔아야
한다고 할아버지에게 소를 팔자고 한다.
할아버지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 우이독경이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머리가 아프신지 머리를 잡고는
그냥 말 없이 그들을 쳐다 본다.
[할아버지 표정에는 슬픔이 가득한것 같앗다. 영화속에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면 그 느낌을 알것이다 이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할까]
너무 슬픈장면중 한장면이다.
그리고 추석명절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소를 끌고 논에 가신다.
낫을 들고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멍허니 옆 논에서
쉴틈없이 굴러가는 콤바인를 바라 보신다.
할머니 투덜투덜 애교어린 말을 한다. 할아버지 들으라고
그리고는 콤바인이 할아버지 앞에 선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부모님 힘드시다고 콤바인를 빌린 것이다.
그리고. 추수를 마치고 바리 바리 자식들에게 쌀을 보내신다.
그 무거운 쌀을 읍내까지 운송 책임자는 할아버지와 소
수십년간 가을이면 짐을 나르던 그 길이 더 힘들게 보이는
소의 뒷모습에 앙상함만이 가득하다.
가을 어느 날 암소가 낳은 송아지가 우리 밖에 뛰쳐 나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고생을 하신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소를
팔기 위해 소 매매 중간 상인을 부른다.
그리고 터무니 없는 가격에 할아버지는 일언거절 소를 팔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날 밤 그 송아지는 중간상인에 차에 실어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런 사이에 할아버지의 소는 더 더욱 힘든 모습을 보인다.
할아버지는 소를 끌고 소 시장을 찾는다
할아버지는 소를 팔려고 소 시장에 가신것이다.
왜 파시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소 시장에 상인들은 늙은 소를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터묻이 업는 가격에 상인들은 비웃음 거리만 된다.
상인.. 이 소 잡아봐야 고기 30만원밖에 안 나옵니다.
다른상인 그럼 한번 100만원이라도 내 놓아 보시겠습니까
상인.. 그럼 이 소 얼마나에 내 놓으실려고요 묻자
할아버지.. 500만원 아니면 안팔아 이 소가 얼마나 좋은 소인데
자동차가 오면 알아서 피한다고 하고 말을 한다
할아버지는 이 소를 절대로 팔지 않는 맘이였다
그리고 늦은시간 집으로 가는길에 저물어 가는 태양
저 편에 석양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덧 가을이 물러가고 찬기운이 감도는 초 겨울..
할아버지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또 어딘가로 가신다.
겨울 준비를 하러 가신다.
그의 파트너와의 마지막 작업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를 하러 가신다.
그리고 마당 앞에는 겨울 내내 훈훈하게 해 줄 나무와 장작들이
수복하게 쌓여있다..
그리고 몇 칠후 늙은 소는 마구간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를 못한다.
할아버지는 소의 죽음을 알기라도 하듯
소의 고삐와 멍에를 풀어준다
이장면은 너무나 슬프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소도 눈물을 흘린다.
마치 오래된 벗에 얼굴을 보는것 처럼
둘은 그렇게 서글퍼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소를 밭에 묻어주시면 기꺼이 상주가 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힘든 날을 같이 했던 이름 모를 소
단순히 소의 죽음만을 슬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 속에서 많은 의미를 찾아 내려는 억지 스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 드리며....
워낭소리를 보고 위의 글이 생각 났다.
할아버지는 사랑할 자격이 있다는..
다른 이를 위해서 자기 내부이 어떤 세계를 만들어
인간과 소통할 수 없고 인간과 겉모습이 같지도 않은
영원한 파트너를 사랑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찌보면 사람의 겉 모습으로 많은 것을 판단한다.
육체적. 감각적. 쾌락적인 그런.
다른 이를 위해서 자기 내부의 어떤 세계를 만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사랑을 우리는 해야 한다.
그러나 나와 우리는 또한 그러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눈에 보이는
달콤함에 빠져 단순한 육체와 쾌락을 탐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글이 너무나 길죠...
신청곡 들려주세요.
[You Are Not Alone]
마이클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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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이민선
2009.03.27
조회 7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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