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처조카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처갓집에 갔는데 그러한 연유는 녀석은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신 때문이다.
박복하여 양부모를 모두 여읜 처조카는 장모님께서
거두시어 이제껏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기까지 하여 어느새 23세의 성인이 되었다.
내 딸과는 동갑인데 생일이 늦는 까닭으로 여전히 내 딸을
“누나”로 부르는 녀석인지라 왠지 그렇게 더욱 살가운 놈이다.
아들과 함께 가면서 빈손으로 가긴 뭣하여
조그만 케이크와 녀석이 볼만한 책을 몇 권 골라 가지고 갔다.
강호동 이상으로 기골이 장대한 녀석이 허리를 꺾어 꾸벅 인사를 했다.
장모님께선 술 좋아하는 이 사위에게 매실을 사서
담근 매실원액도 모자라 소주는 아예 대(大)병으로 내놓으셨다.
주전자를 찾아 매실원액과 소주를 부어
그 자리를 찾아온 다른 아이들(처조카들)과 함께 마셨다.
미리 와 있던 아내는 그만 마시고 가자며 성화였다.
아이들은 2차로 노래방에 간다며 합석을 권유했다.
“나같은 꼰대가 끼어봤자 분위기만 죽이지 뭐.”
우산을 펼쳐들곤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왔으나 바지 아래는 흥건하게 젖고 말았다.
샤워를 하면서 머리를 또 감았다.
그리곤 안방의 거울을 보면서 빗질을 시작하는데 아내가 또 한 마딜 했다.
“빗어봤자 당신은 얼추 대머리 아저씨라고...
그러니 돈 벌면 가발부터 하나 사서 써.”
젊었을 적엔 머리가 치렁치렁도 모자라 아예 장발(長髮)로
머리칼이 와이셔츠 깃 아래까지 내려온 적이 있었다.
당시는 경찰관이 가위를 가지고 다니며 단속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어쨌든 바람에 나부끼는 나의 긴 머리는
뭇 여성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어떤 모티프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엔 항우장사도 소용없는 법이었고
덩달아 그토록이나 무성했던 나의 모발(毛髮)도
시나브로, 아니 성큼성큼 빠져나가고야 말았다.
하여 지금은 이마의 면적이 더욱 넓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그러다보니 이따금은 가발(假髮)의 유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오늘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보자니 유명탤런트
L씨가 나오는 가발광고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근데 그 회사의 가발을 무료 체험하는데 보증금으로 30만 원을 내면 가능하다고 했다.
‘무료 체험’한다면서 보증금으로 30만 원씩이나 받아?
하기야 공짜로 그냥 줬다간 어찌 그 가발이 성하랴마는.
예전엔 삼림(森林)이상으로 머리칼이 창궐했던 나의 젊음은 이제 가고 없다.
그래서 얘긴데 인스턴트라면 식으로 불과 1~2만 원으로
가벼이 사서 쓰는 가발은 왜 출시가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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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假髮)의 유혹
홍경석
2009.08.13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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