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가 1989년이니 올해로 꼭 스무해 전의 일이네요.
고 3 수험생이었고, 대입학력고사가 백 여 일 남은 때였고, 더위가 살짝 꼬리를 내린 가을 초입이었습니다.
여름 내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더랬죠.
방학 내내 교실을 무상으로 오픈해 준 학교 덕택에, 독서실도 안 가고 도서관도 안 가고, 선풍기도 없는 교실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문제집을 풀고 외울 것을 외우고 했구요.
공부하다 머리 아프면 운동장에서 미니 농구 한 판, 배고프면 교문 밖 분식점에서 떡볶이와 라면 한 그릇, 집에 가면서 오락실에서 테트리스 한 판...
그랬던 여름을 보내고 학력고사가 백 여 일 남았던 그 때였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백일주를 마셔야 무사히 시험을 볼 수 있다고... 백일주를 여자가 따라주어야 대학교에 갈 수 있다고... 그것도 친인척을 제외한 미혼 여성의 손으로 따라주는 술을 마셔야 원하는 대학교에 '재수' 없이 갈 수 있다고...
주위 여학교를 급습해 방석을 훔쳐 돌리고, 여자 속옷의 효험을 말하는 등 별별 루머가 난무한 어수선한 수험 준비 분위기.
다른 말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백일주 이야기에는 괜히 그럴 것 같다는, 안하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답니다.
아는 여자? 아쉽게도 없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서울로 전학와서 남녀가 같이 다닌 학교라고는 고작 초등학교 4개월 기억 밖에 없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Only Man만 다니는 곳이었죠.
그렇다고 교회나 성당이나 절 등에 나가는 종교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주 활동 무대는 여자라고는 대학생 누나들이나 한둘 보일까 말까 한 동네 오락실이 고작이어서 '아는 여자'를 찾는 건 무리였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이 하나 둘 백일주를 마실 파트너 이야기를 합니다.
점점 불길해지더군요. 정말이지 안 마시면 대학에 못 갈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럴싸한 핑곗거리야 생기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보자는 게 생활 신조다 보니 최선을 다해 궁리해 봅니다.
서울에서의 짧은 초등학교 생활 동안 기억 속에 남는 여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반장하던 친구였는데, 무리 중에서 돋보이는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 친구였죠.
지방 사투리 심한 저로서는 차마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기억도 납니다.
그 여학생을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어요.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선가 주관했던 `국토순례대행진`이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서울시 소속 고등학교에서 각각 2명씩 인원을 선발하여 아산 일대와 충주 등등을 `행군`하는 스케줄로 되어 있었고, 키도 별로 안 크고 덩치도 크지 않았지만 똥배짱을 부려 그 행사에 학교 대표로 참석했었더랩니다. 키와 덩치가 중요했던 것은 그 `행군`의 복장이 교련복에, 완전군장에, 군화까지 신어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차림이었기 때문이었죠. M-16 모의 소총으로 분열 연습도 하고, 소대 중대를 나누어서 아산 모 초등학교 운동장에 텐트치고 자는 등 소규모 군사훈련 코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여튼, 그 행사에 갔다가 그 여학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어느 학교 소속인지만 겨우 알게 된 채로 다시 긴 이별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했고, 그 여학생이 다니는 여학교에 친구를 둔 녀석을 찾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다리를 놓아 줄 것을 부탁합니다. 같은 교회 다니는 친구가 있으니 한 번 알아보겠노라고 흔쾌히 수락합니다.
드디어 답이 왔습니다.
연락 가능할 것 같다며 언제 만나는 게 좋을지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양천구 목동오거리에 있는 `겨울나그네`라는 레스토랑으로 기억됩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저로서는 `데이트하는 장소는 당연히 레스토랑`이라는 TV의 악영향을 받아 그렇게 정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직접 정한 게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거기를 알 턱이 없기 때문이죠.
하여튼 그 곳으로 약속을 정하고, 약속 날짜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향합니다.
그 친구가 들어오고, 그 친구의 친구들 둘이 더 들어옵니다.
1:3 데이트입니다.
워낙 숫기도 없던 터인데 더더욱 쑥스러워집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과일 쥬스를 마셨는지 커피를 마셨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냥 그녀가 제 앞에 있었다는 기억만 날 뿐입니다.
레스토랑을 나와서 한창 아파트 단지를 개발 중인 목동 신시가지를 걷습니다.
저와 그녀가 앞에 서고, 두 친구들은 집에 갈 생각도 안 하고 눈치도 없이 뒤에서 졸졸 따라옵니다.
한참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그 또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에 심어 둔 해바라기가 초가을 햇살 아래서 한껏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어느 학교 앞 분식점으로 들어갑니다. 떡볶이와 만두와 오뎅 등을 푸짐하게 시킵니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과 나누어 먹습니다.
그녀에게 집 전화번호를 물어봅니다. 종종 연락해도 되냐고 묻습니다.
그녀는 그러라고 선뜻 대답합니다. 내심 걱정했는데 날아갈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게 바로 스무해 전 일이네요.
그 후 상황들은 머리 속에서 다큐멘터리 필름 돌아가듯 후다다닥 흘러갑니다.
숫기 없던 저는 차마 백일주 이야기를 못 꺼냈던 걸로 기억하며,
그녀 대신 형님을 꼬셔서 포장마차에서 소주 두 잔 받아마시고 헤롱거리며 주정했던 생각도 나며,
고등학교 학창시절 마지막 중간고사 기간에 여유 부리며 그녀를 만나 목동사거리와 파리공원을 넘나들며 데이트하다가 시험을 망치는 바람에 내신 등급이 위태했던 기억도 나며,
그녀가 11월 초 이사를 하고 전화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통에 수취인 없는 혼자만의 편지를 노트 한 권에 끄적거리던 기억과,
학력고사 전날 그녀로부터 찹쌀떡 소포를 받고 기뻐했던 감격과,
학력고사 후 그녀를 만나 혼자 적었던 일기 비슷한 편지 노트를 주며 감동할 꺼라고 기대했던 순진함이 기억납니다.
여자가 아닌 형님과 백일주를 마셨는데도 다행스럽게도 대학교에는 무사히 합격했고,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하면서 그녀에게 군대 간다는 말을 하면서 무언가 로맨스 비슷한 분위기를 잡아보려고 했는데 그저 잘 다녀오라며 면회가겠다는 그녀의 말에 적잖이 섭섭해했던 기억도 나고,
남양주 부대에 자대 배치 후 첫 면회를 온 그녀의 바뀐 모습에 깜짝 놀랐던 충격과,
시간 날 때마다 PX에서 사온 하얀 편선지와 원고지에 써서 보냈던 군사우편 300여 통과,
제대 말년 휴가 때 나와서 고백해야지 하다가 술에 취해 아무 말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던 기억과,
복학 후 현실과의 갈등으로 `너와는 안 될 것 같아. 헤어지자`고 했던 신천 골목 어느 카페와,
한 번 내뱉은 말 때문에 6개월 동안 못 보다가 다시 만나게 되어서 그녀의 속내를 알게 되었던 신촌 미네르바 카페와,
그녀와 만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첫 차 티코와,
함께 떠났던 설악산 여름 여행과 대학 졸업, 입사, IMF 여파로 인한 실직 등을 지켜보던 그녀,
그리고 비가 펑펑 오는 98년 4월, 긴급하게 천막으로 급조한 야외결혼식장에 함께 섰던 그녀,
이제는 맨날 늦게 들어오는 저를 투정 반 동정 반으로 쳐다보는 그녀,
그녀를 영원히 사랑합니다.
9월 5일로 이제 그 날로부터 딱 스무해 되네요.
자축하는 의미에서 처음으로 이곳에 사연 올려봅니다.
아마도 9월 5일 방송시간에 함께 차 안에서 꿈음을 듣고 있을 것 같아요. 신청곡도 함께 올립니다.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듣고 싶네요.
늘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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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해 전....
임영모
2009.09.03
조회 7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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