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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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하나
몽이
2009.09.04
조회 51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책상에 수북히 쌓인 읽을거리들을 어렵지 않게 외면하고 녀석의 집앞을 서성이다가 왔습니다.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잠시 집을 비운걸까요? 아니면 그사이 거처를 옮긴 것일까요?
멀리서나마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보았으면 했는데, 신변의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그저 걱정되었을 뿐인데 몇 시간째 불이 꺼진 녀석의 방창문만 쳐다보다 왔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녀석의 거처가 있었더군요..
하지만 지난 1년간 왜 한번도 그 곳을 찾지 않았을까요?
지금 내곁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녀석을 대체할 아무도 없기 때문에 제가 녀석을 찾고 있는 건지 정말 녀석이 그리워서 찾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분명한건, 그동안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실은
서른둘 제 인생에서 저를 가장 잘 아는 한사람, 제가 소중히 여김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한사람, 그리고 가장 함께 하고 싶은 한사람이 바로 녀석이라는 겁니다.
녀석이 제 옆에 있던 그때도, 녀석이 다른 사람 곁에 있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너무도 가난한 커플이었네요.
못된 여자와 바보같은 남자.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를 맘속에 담아둔지 백여일쯤 지나서
제가 예정되어 있던 유학을 떠났습니다. 달랑 이민가방 두 개, 편도 비행기표, 150만원 현금서비스받은 현금과 함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힘들고 외로웠던 유학생활을, 녀석과 함께 버텨냈습니다.


유학1년차에는 매일 눈물과 하소연으로 그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 이야기, 들리지 않는 영어이야기, 매정한 동기이야기, 돈이 없어서 하루종일 물만 먹은 이야기. 차가 없어서 장보러 못간단 이야기... 녀석과의 통화는 이런 제 고단한 유학생활이야기만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게 자그만치 4년남짓 지속되었습니다. 그 4년이라는 시간동안 두 번 그를 볼 수 있었을 뿐, 저는 미국에서 그는 서울에서.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자그만치 4년넘게 매일 전화상으로 눈물범벅의 하소연을 들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왜 몰랐을까요, 그때는?


단 한번도 녀석의 암담한 상황을 물은 적이 없습니다. 하는 일이 번번히 잘 되지 않았지만 저는 그의 의지박약을 탓하고 독설을 쏟으려 했을 뿐 그의 이야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결혼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 ‘유학생활이 끝나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을 수십번 쏟아내며 그와의 미래를 부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4년남짓 한결같이 제 유학생활의 짐을 같이 져주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유학생활 5년차에는 결혼하고 싶으면 다른 여자만나라는 말까지... 녀석이 지쳤던 걸까요? 그렇게 서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귀국9개월여를 남겨두고서. 저의 연락시도에도 그는 묵묵부답. 이제 같이 수확할 일만 남았는데.....

지난 여름 귀국을 하였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녀석의 집을 찾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저보다 더 불쌍한 여자가 있답니다.

해주고 싶은 것들이, 같이 하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책 맘껏 양껏 사서 같이 읽어가며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고
녀석과 나를 연결시켜 주었던 운동도 함께 하며 그의 코치를 받고 싶었고,
우리 못난이 사시사철 때때옷 입혀서 못난얼굴 보완해주고 싶었고,
댕기머리샾푸 대신, 독일제 샴푸에 머리심는 치료도 받아 자신감도 생기게 해주고싶었고
녀석의 생일이면 떠들썩하게 한상차려 지인들 불러모아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받게 해주고싶었고...
무엇보다도 똘망똘망 눈맞춰가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이제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저는 더 이상 녀석의 여자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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