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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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스며든 라일락향기...
이영호
2009.10.22
조회 58
안녕하세요. 윤희씨! 퇴근전 사연을 남깁니다.

오늘 보고서 작성 때문에 참고하려고 한동안 책장 속의 장식품이었던 전공서적을 들고 출근했어요. 그 책은 복학을 앞두고 산 책인데, 열심히 읽었던 전공책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책장을 처음 열어보는 책. 어찌나 무겁던지 출근길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고생했답니다. 그래도 제 사무실 책상 위에 한 때 열정이 스며든 무엇인가를 들고 온다는 생각 때문에 발걸음은 경쾌했답니다.

사무실에 앉아 책장을 넘기다 보니 책 사이사이에 그때의 흔적이 변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문구마다 그어진 형광색, 초록색, 연보라색 편의 향연, 책 귀퉁이에 쓴 수식과 그래프, 그리고 페이지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통계표와 보기 좋게 그려진 그래프까지. 수년 전 캠퍼스의 기억을 떠올리게 충분했답니다. 제 보고서에 인용해야 될 부분을 찾으려 한참 책장을 넘기다가 책장 사이에서 곱게 마른 라일락꽃을 보았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물이라도 찾은 기분이었죠. 한동안 가엔 잘 마른 라일락꽃 때문에 미소가 사라질지 몰랐고, 더불어 군대 다녀온 이후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보냈던 세 번의 봄과 그 시절 아픔도 떠올랐습니다. 보고서 작성의 시급함도 잊은 채 말이죠.

군대 다녀온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캠퍼스와 아파트 뜰에 핀 4월 라일락 군락을 볼 때면 꽃을 하나둘씩 꺾었습니다. 달콤 쌉싸름한 향기를 깊은숨을 여러 번 들이키며 음미하다가, 그 향기를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대로 책 사이에 끼워 두었습니다. 그렇게 라일락향기를 봄 지나 여름 가을 겨울까지 간직했었다. 내 책상과 사물함을 장식했던 전공책, 심지어 사전에도 어김없이 라일락향기가 스며 있었죠. 그리고 겨울이 시작될 즈음이면 책 사이에서 잘 마른 라일락을 코팅하여 책갈피용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답니다. 생각해 보니 그 책갈피를 받았던 사람 중에는 제 아내도 제가 만든 라일락꽃 책갈피를 받았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지 5년. 매년 봄 라일락향을 음미하지만, 캠퍼스에서 보낸 날처럼 라일락향을 여름이나 가을 겨울까지 간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라일락보다 돈의 향기가 더 중요하다는 경제학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돈향기가 감정을 메마르게 할 법도 하지만, 감정은 메마르지 않은 채 돈의 향기를 쫓아가는 삶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삶 속에서 라일락은 그저 흔한 꽃향기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에 갑자기 씁쓸해지네요.

2009년 10월 22일 아침. 한동안 잊고 있던 라일락을 참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라일락에 담긴 추억과 2003년 봄의 향기가 고스란히 살아나 제 마음을 울린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라일락은 가르쳐 주었답니다. 한 때의 아픔은 시간이 흐르면 한 때의 추억이 된다고....

신청곡 : 김동률,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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