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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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흰 당나귀
2010.01.04
조회 112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모여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더 자세히 얘기하면 기간제 교사입니다. 여러 사정으로 서른이 지나서야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지금까지 4년째 일 년짜리 기간제 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매년 이 맘 때면 저 같은 기간제 교사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무거워진답니다. 당장 새 학기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모두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의 행복함으로 그 마음을 이겨내면서 왔을 것입니다. 저도 물론이고요.
그런데 올 해는 유독 마음이 무겁습니다.
새해 들어 서른 다섯 살이 되었거든요. 아직 결혼도 못했고 그렇다고 결혼할 수 있는 준비도 갖추지 못했고 비정규직인 채로 말입니다.
언론에 심심찮게 얘기되고 있는 만혼 현상은 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30대가 늘어간다는 말도 참으로 와닿습니다. 여성들이 연봉 4500 만원 정도의 남성을 배우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저를 좌절하게 하고요.

그런데 사실.. 제 마음에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 마음속 여자는 제가 작년에 이 학교로 오면서 함께 근무하게 된 국어선생님입니다.
굵은 머리핀으로 묶어 내린 긴 생머리가 한결 같은 어여쁜 분입니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의 나타샤가 아마 이 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학기는 별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을 했고요.
보통 방학이 반 정도 지나면 슬슬 아이들이 보고 싶어지는데 이번엔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이 자꾸 아른거리는 거예요. 저 자신도 놀랄 만큼 불쑥! 하고요.
업무상의 대화도 가뭄에 콩 나듯 했고 마주친 적도 자주 없었는데 말입니다.
사실 ‘참 착실하고 예쁜 분이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마음은 전혀 없었거든요.
여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와 제 처지가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없게 했던 것이죠.
여름 방학 때 왜 그 선생님이 보고 싶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답니다.
그렇게 그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음을 확인한 후 다시 한 학기를 보내고 겨울 방학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문자메시지도 가끔 하고 감기에 걸렸을 땐 약도라지를 달여서 주기도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말을 못했습니다.
마음만, 그저 마음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만으로 끝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된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직장도 불안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으니까요.
나이가 나이니 만큼 스무 살 시절처럼 열정만으로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요.
혹자는 저의 소심함을 탓할 수도 있고 그러다가 더 후회하게 될 거라고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 많은 만혼자와 결혼 포기자들이 하나같이 소심해서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후회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요.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사랑을 하고 싶을 겁니다.
배고픈 사람이 더 밥을 그리워하듯이 말입니다.
저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으니까요.

올 새해에는 가진 것 없는 30대들도 ‘사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탄식보다는 의지가 어울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꿈음> 식구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 러브홀릭스 butterfly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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