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초반에 하고 싶은 종이에 적어내려 가면서 "名山 한번 가보자"가 12월 말에 이루어질 줄이야. 정말로 유명인의 말대로 종이에 적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고 만 것이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연히 대학교때 만난 친구와 마음이 통해 둘이서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렇게 명산은 친구나 나나 처음인지라 두려움 반 설렘반이 내 가슴 한켠을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규칙적으로 운동한 가닥이 있어서 자신감이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이런 오만가지 심리를 갖고 지리산과 2박3일간 친구가 되야 한다니깐 왠지 이성과의 첫만남처럼 느껴진다. 혹시 지리산은 무덤덤하게 아무생각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런지 모른다.
수원발 기차에 몸을 싣고 4시간 가량 달려온 지역은 전남 구례였다. 이곳에서 50분정도 택시를 타고 성삼재 입구에 도착했다. 칠흑같은 어둠이 더욱 긴장감을 조성하며 간단히 라면으로 아침식사 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노고단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우리를 반겨준 것은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수십만개의 별이었다. 군복부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별구경이었다. 야간 산행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 덧 삼선봉 즉 전라북도와 남도 그리고 경상남도가 만나는 봉우리에서 일출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이를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우리는 사진기에 풍경을 담아가기로 했다.
우리의 첫 숙박지인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하려면 산행 중간에 놓칠 수 없는 눈꽃 풍경들과 웅장한 바위들은 신속정확하게 사진기에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남는 건 사진 뿐이지 않는가!
또 중간중간 마음씨 좋은 산악인 분들이 간식과 부식을 챙겨주셔서 편안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업슨 따뜻한 광경이었다. 한 가지 모순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도심 속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도심을 떠나 자연에 온 도시인들이 아마도 이런 훈훈한 인간미를 느끼고 싶어서 찾아왔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주변 이웃과 친구 친척들보다 마음편히 자연을 배경삼아 서로가 평등한 위치에서 베품이 오가는 광경은 이번 여행에서 큰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느 때보다도 혹독한 추위에 산행인지라 이 모습은 찜질방 속 시원함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굳이 한명을 기억하자면 천왕봉 정상고지에서 케이블카 설치반대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아저씨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처음 만난 이분의 이미지는 도를 닦는 모습으로 내 머릿 속에 저장되었다. 처음에 우리에게 김치 있느냐며 여쭤 보시면서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모습에 감동 받았다. 그 당시 "라면에 김치 없으면 무슨 맛으로 라면을 먹을까?!"라는 멜로디가 저절로 흘러나왔으니 얼마나 맛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저씨의 베품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리가 1915m의 천왕봉 고지에 올랐을 때 아저씨는 그 곳에서 1인시위 중이었다. 자연을 파괴하여 케이블카 설치하는 정부에 항의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연이라는 것에 개인적으로 아저씨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1인시위까지 하시며 몸을 아끼지 않는데.... 나는 내가 가장 가치있어 하는 것에 얼마나 열정을 보였는가를 돌이켜보니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이런 깨달음을 뒤로하고 다음 대피소인 로타리 대피소로 향했다. 그런데 뒤에서 산행인 아주머니께서 우리에게 김치 있느냐며 소리치셨다. 천왕봉 시위 아저씨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라고 아주머니께 말씀하신 것이었다. 정말 감사한 마음에 어쩔줄 몰랐다. 지리산에 광팬이 되려는 찰나 결정적인 배려에 열렬히 광팬으로 남기로 마음 먹었다.
자연과 벗삼아 2박3일간의 산행은 앞으로 우리의 인생에 있어 큰 밑거름이자 교과서 역할을 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타인과의 소통은 곧 포용과 관용에서 나온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는 다시 도심으로 돌아와 일상에 임했다.
개인적으로 4학년 졸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지리산 종주를 꼭 추천하고 싶다. 취업난으로 어느때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졸업예정자들을 대표하여 화이팅을 외치고 싶다.
-신청곡 : 윤도현밴드 & 바비킴 " 여행길 " 부탁드립니다.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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