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 게시판 성격 및 운영과 무관한 내용, 비방성 욕설이 포함된 경우 및
  기명 사연을 도용한 경우 , 관리자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 게시판 하단, 관리자만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입력란]
   이름, 연락처, 주소 게재해주세요.
* 사연과 신청곡 게시판은 많은 청취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사적인 대화창 형식의 게시글을 지양합니다

또 하나의 시각 ^^
박계현
2005.07.19
조회 18


「개미」

김진엽(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흙이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보다 훨씬 많던 시절, 내 또래의 동네 아이들에게 개미는 장남감이었다. 개미 집에 플라스틱 빨간 바가지로 물을 부으며 그들에게 다가올 대홍수의 환란을 즐겼다. 물바다에 허둥대는 개미 한 마리를 나뭇잎 위에 올려 놓고, 노아의 방주를 마련해 준 꼬마 절대자의 고약한 권력을 뽐냈다.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었다. 전체 4부작 중 1부를 읽었다. 참 재미난 소설이다. 불 끄고 그만 자라는 타박까지 들어가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소설 <개미>가 이토록 재미난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이야기 전개의 재미를 들 수 있다. 셜록 홈즈적 미스터리와 추리, 개미들간의 박진감 넘치는 전쟁 스펙타클, 개미와 인간 사이의 묘한 대비 등이 어우러져 소설 <개미>는 유려하면서도 섬세한 이야기의 집을 짓는다.

더욱 재미난 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들려주는 개미에 대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이다. 여러분이 이 칼럼을 읽은 몇 초 동안 40명의 사람과 7억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서 태어나고, 30명의 사람과 5억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개미는 최초의 사회를 형성한 우리 행성 최초의 주인이었다. 개미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다. 개미는 노예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있다. 개미는 동료 개미가 굶주렸을 때 자기 몸의 영양분을 빼내 입을 통해 전달해 준다. 개미의 시계는 피부이고, 개미의 시간은 온도이다.

그러므로, 소설 <개미>는 작품의 형식 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우리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듬뿍 지니고 있다. 그러나, 소설 <개미>의 재미 뒤에는 묘한 두려움과 반성이 이 따른다. 홍수나 핵폭발 등 대재앙이 실제로 닥쳤을 때, 나와 개미 중 어느 편이 생존할 가능성이 많을까? 한 바가지의 물에도 버둥대는 개미의 신세에 미소 지을 만큼 내가 개미보다 우월할까?

얼마 전 간행된 <집단정신의 진화>(하워드 블룸 지음)에 따르면, 박테리아와 곤충은 집단 간의 정보 교환망을 인간보다 훨씬 먼저 발달시켰다. 냄새나 호르몬 같은 화학 신호를 통해 이들은 "넓게 퍼져라, 도망쳐라, 새로운 곳을 탐험하라" 등의 정보를 소통시킨다.

예컨대, 박테리아는 한 개체로서의 생존이 위기에 부딪히면,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도망쳐라"라는 신호에 해당하는 분비물을 배출하여 집단의 생존을 도모한다. 개미 또한 페로몬이라는 호르몬을 통해 식량의 위치 및 분량, 적의 동향 등에 대한 정보를 소통시킨다. 이러한 신속한 정보 소통 덕분에 박테리아와 곤충의 집단은 인간의 집단보다 더 뛰어난 생존능력을 진화시켜 왔다. 사라진 줄 또는 정복된 줄 알았던 천연두균, 폐결핵균, 머릿니 등의 부활과 번식도 이들 각 집단 내부의 정보 교환을 통해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공유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자인 하워드 블룸의 책이 인간에 대해 마냥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호르몬 대신 모방학습이나 언어로 정보를 계승하고 전달해 왔다. 그리고 오늘날 인터넷과 같은 전세계적인 통신망의 구축은 정보전달의 정확도와 속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하워드 블룸에 따르면, 이제 인간도 초고속 통신망을 통한 정보교환 덕분에 박테리아나 개미만큼이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위험한 환경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워드 블룸의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입맛은 씁쓰레하다. 세계 제일의 초고속 인터넷망을 자랑하는 우리는 왜 아직도 다리 위에서, 건물 속에서, 지하철 안에서 우리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까. 울음이라는 화학적 신호를 얼마나 많이 흘려야, 우리는 우리가 너무 많은 위험을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까. 개미들이 도망친 이 도시 위에서 우리는 오늘도 마천루를 세우고, 땅 속을 파고, 자동차로 한강을 건넌다. 우리의 욕망이 우리의 생존을 덮는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