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로부터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어딘가 먼 바다의 파도치는 소리를 녹음해온 테이프였다.
침대 위에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운채로, 가만히 그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어머니 뱃속의 태아가 듣는 어머니의 심장소리처럼, 태고적부터 인류가 들어왔을 그 규칙적이고 편안한 파동에 그대로 몸을 맡긴다.
나도 먼 바다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먼 바다의 영상은 꿈에 보듯 나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앞서 만난 모든 여행자들이 몸서리를 치며 경고했던 그리스의 그 낡은 3등 열차칸에, 성급하고 서툰 나를 구겨넣었다. 그러나 성급하고 서툰 나에게 내려진 것은 징벌이 아니라 포상이었다. 낡은 기차는 천천히, 그러나 다시 돌아볼 여지를 주지 않고 해안선에서 불과 몇미터밖에 되지 않는 철도 위를 묵묵히 달렸다. 그 뿌연 창 속으로 내가 다시 찾을 수 없는 풍경들이 나를 스쳤다. 바다, 아무도 없는 바다, 가로등이 있는 바다, 소년이 서 있는 바다. 수많은 바다들이 지나자 나타난 바닷가의 집, 바닷가의 차, 바닷가의 의자, 바닷가의 아저씨. 그리고 슬며시 나타난 내가 비치는 바다. 마침내 만난 나와 바다.
친구는 아무 전갈도 없이 우리 모두를 떠났었다. 비가 심하게 내리치던 밤, 낛시대와 함께 없어진 그를 우리는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실종신고를 내고, 그의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부탁하여 수소문을 하고, 작은 방송국의 심야방송 DJ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까지 부탁하여 그의 종적을 찾아나섰지만, 그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핸드폰도 꺼놓은채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그런 그가 아무말 없이 돌아와 내 손에 이 테이프를 꼭 쥐어주고는 다시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마치 이것으로 그런 자신을 좀 이해해달라는 듯이.
고래는 바다에 사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고래에는 퇴화된 다리의 흔적이 있다. 진화의 단계를 따라 육지로 나간 고래의 먼 선조는 육중한 몸으로 중력을 이겨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먹이를 구하러 돌아다닐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애써 적응한 육지생활을 버리고 다시 차츰 바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처럼 돌아가야 하는 때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 편안한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면, 슬픔의 무방비상태에 놓인 그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달려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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