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변하는 거야. 정은 없어지지 않지. 정들었으니 결혼 하는거야"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그 말이 시작이 되어 연애 삼년만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우리의 결혼.
스물셋에 당신을 만난 저의 나이 스물 여섯이었지요.
결혼은 아무것도 모를때 하거나 아님 아주 다 알고 하거나..우리는 전자였지만, 주변에서 하나 둘 세속적인 연애를 할 때나 결혼식을 올릴때 우리의 결혼은 언제나 철없는 제게는 비교의 대상이 되었지요.
누구는 남자친구랑 어디서 뭘 했다더라, 남자가 어떤 집을 준비했다더라,.. 그 중 저희 다툼의 쟁점은 단연 프로포즈였습니다.
궁합도 안본다는 네살차이었지만, 시댁도 기독교라 정말 궁합도 보지 않고 시작한 결혼이었지만, 제눈에는 그저 사람 좋고, 항상 저를 이끌어주는 오빠 한사람만 보고 시작한 결혼이었거든여.
오빠없으면 안될것 같고, 오빠 말대로 정들었나보다, 결혼할 사람인가보다..라며 자연스레 결혼으로 이어진 것인데, 너무 이도저도 재지 못했던게 화근이었던걸까요? 결혼하기 전부터 오빠의 통장관리부터 해오며 결혼자금준비부터 알뜰하게 해왔던 제가 언제부턴가 심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시댁에서 '이것'도 해준다던데..라는 바램의 시작으로 항상 그래서 오빠는 나와 결혼하려고 프로포즈 한번 제대로 해보았냐..로 끝나는 우리의 다툼은 항상 궁지에 몰린 제가 꺼낼 수 있었던 마지막 카드였지요.
프로포즈에 관한 오빠의 준비가 없었던건 사실이지만, 오빠의 방식은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것이었고, 결혼한지 3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잘 지켜오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은 그런것이 아니었기에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는 방식만을 강요했나 봅니다.
그러던 오빠가 이제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조금 안정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제가 먼저 유학이라는 화두를 꺼냈을때, 많이 고민했겠지만 쉽게 '그래, 네가 원한다면..'이라는 얘기로 결론을 내 주었을 때, 나는 왜 그리 당연하게 받기만 했을까요..
내년 2월로 날도 잡혀졌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다니는 제가 먼저 사표를 던지고, 오빠도 기꺼이 동의해 줬을때, 비로소 정이라고만 포장했던 오빠의 사랑이 한결같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음을 실감했습니다. 네.. 솔직히 제가 저질러 놓은 일에 오빠가 너무도 흔쾌히 오케이 해주어 아직도 얼떨떨 합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가는 인생의 '통과의례'로 수용하고, 양가 부모님을 설득시키고 돌아서 땀을 닦을때,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오빠식 사랑법을 실감했답니다.
혼수대신 자금으로 합의하에 시작한 결혼이었기에 아직까지 그 흔한 커플링한번 해본적 없지만, 이제껏 당신이 내게 보여 준 사랑과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프로포즈를 못했던 당신을 원망하며 지내기 보다는 내가 먼저 손내밀 수 있는 용기도 이젠 가져보려 합니다. 언젠가 당신이 그랬지요..
'왜 너는 못할까..나는 아직 익숙치 않은 방법에 대하 너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데..누가 먼저라는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라고 말입니다.
누가 먼저라는게 정말 무의미한 것인데도 나는 나는 낮추지 못하고 당신께 바라고만 있었습니다. 결혼 한 후의 프로포즈가 정말 쌩뚱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의 서막을 60일 앞두고 있는 지금 시점에 나는 당신께 꼭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으로 인해 비로소 다시 태어났으며, 내 안에 있는 이기적 사랑 그 이상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한 것을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늘 곁에 있어 표현에 인색했을지 모르는 내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가 아니었더라면 가히 생각치 못했던 많은것들을 함께 해왔으며, 또다른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전혀 두렵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젠 당신과 함께라서 그 어느때보다 든든합니다. 지금껏 잘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당신과 함께라서 더욱 잘 해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그리고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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